"소상공인·中企 신속구제로 이중고 해소…사전예방도 지원"

by조용석 기자
2021.11.12 07:03:00

[만났습니다]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①
“조정은 사람이 하는 일”…조정인력 역량강화 초점
화상 방식으로 조정협의회 열어 코로나 영향 최소화
“구제보다 더 중요한 사전예방”…CP제도 재활성화 기대
“상임위원 있어야 빠른 조정 가능해”…법제화 숙원

[이데일리 조용석 공지유 기자] “조정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신속하게 조정을 이끌어 피해를 당한 어려운 소상공인·중소기업을 빨리 구제하는 것입니다. 항상 하는 일이기에 빛이 나지 않을 수 있으나 우리 기관의 정체성은 조정을 얼마나 신속하게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임하자마자 조정에 걸리는 기간을 줄이려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사진 =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58)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조정원’에서 ‘진흥원’으로 개편을 추진하고 연구기능을 강화하는 등 조정원 역할 확장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으나 조정원의 본분은 사회의 ‘을(乙)’인 소상공인·중소기업을 위한 조정에 있음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다.

실제 조정원은 지난 3월 김 원장 취임 후 신속한 조정을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조정에 빨리 착수할 수 있도록 사건 배당절차를 간소화하고, 직원별 사건배당 카드를 만들어 진행 상황을 팀장·실장급이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조정에 뛰어난 성과를 낸 직원의 노하우를 함께 공유하고 내부 문제를 냉정히 판단하기 위해 외부 강연자까지 초청한 것 모두 새로운 변화다. 이 같은 노력으로 4월 말 기준 56일이던 사건처리 소요기간은 51일(10월말 기준)로 반년 새 9% 가까이 단축됐다.

이와 함께 조정원은 △가맹종합지원업무 △자율준수프로그램(CP·Compliance Program) △협약이행평가 등 사전예방프로그램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 원장은 “분쟁 조정을 통한 피해구제도 중요하나 처음부터 불공정거래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면 그게 더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겠나”고 말했다. 정치권도 이 같은 취지를 공감, 최근 유명무실해진 CP(기업이 사전에 법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프로그램 및 사내 조직 등을 구성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평가해 등급을 부여) 우수기업에 인센티브 부여를 법제화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김 원장은 조정과정에서 중재안을 만드는 등 핵심 역할을 하는 ‘분쟁조정협의회’가 자주 열릴 수 있도록 상임위원 도입도 간절히 바랐다. 현재 조정협의회 위원은 위원장인 김 원장을 뺀 51명이 모두 교수·변호사 등 본업을 겸직하는 비상임위원이다. 상임위원이 없다 보니 조정협의회가 적시에 신속하게 열리기 쉽지 않다. 김 원장은 “조정이 빨리 처리될 수 있도록 상임위원이 최소 2명이라도 확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조정 절차를 이용하는 대부분은 소상공인·중소기업이다. 조정이 성립되지 못해 공정위에서 사건으로 처리하게 되면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피해 소상공인·중소기업은 다시 돈을 받기 위해서 피신청인 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조정원이 조정 성립률을 높이고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유다. 또 공정위에서 사건화되지 않고 조정으로 마무리되면 공정위의 부담도 줄어든다. (조정원은 지난해 1308건을 조정했고, 피해구제액은 1207억원이다)

△먼저 분쟁조정 사건 접수 후 종전처럼 부서장(실장)을 경유하지 않고 바로 아래 팀장이 조정 인력에게 사건이 배당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했다. 직원별로 사건카드를 만들어 현재 처리 중인 사건을 매주 업데이트하고 팀장은 매주, 부서장은 2주일에 한 번씩 진행 상황을 점검토록 했다. 이중 고액사건 또는 사실관계가 복잡한 사건은 별도 관리한다. 또 조정원이 다년간 사건을 처리하며 축적된 노하우를 조정 인력이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내부용으로 분쟁 조정 책자도 만들었다.

△맞다. 조정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올해 4월부터 분쟁조정실 우수 조정인력을 원내강사로 활용한 분쟁조정 자체 교육을 매달 실시하고 있다. 이들은 조정사례를 중심으로 한 분쟁조정 기법 및 노하우, 관련 법률 등을 교육한다. 강사로 나오는 직원들은 사실상 업무에 없는 가욋일을 하는 것이니 상금 등 인센티브도 준다. 또 내부에서는 정확히 문제점 파악이 어려울 수 있어 외부 강사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서울중앙지법 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을 초청해 조정인의 역할과 조정기법에 대해서 교육했다. 외부 강사는 조정기법보다는 조정에서 임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지를 먼저 설명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조정 인력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사진 =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당사자 대면 조정이 어려워지면서 최근 들어 조정절차가 다소 지연되는 측면이 있다. 원격 화상회의를 활용해 비대면 조정을 시도했으나 불공정거래행위 관련 사업자 분쟁은 복잡하고 서로 감정이 상해있는 경우가 많아 대면 조정보다 당사자 설득이 쉽지 않았다. 조정안을 심의하는 조정협의회에 화상회의를 도입한 것은 효과를 봤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58회의 조정협의회 중 27회를 서면으로 개최했는데 서면으로 하다 보니 실시간 의견 교환에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올해 5월부터 화상회의를 활용한 비대면 조정협의회를 도입해 속도를 높였다. 최근 사건처리 기간을 단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렇다. 분쟁조정을 통한 피해구제도 중요하지만 불공정 거래행위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 먼저 올해 3월 정식 개소한 가맹종합지원센터에서는 분쟁을 사전 예방할 수 있도록 상담, 공정위 신고지원 및 소송지원 등 종합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사전예방의 일환으로 공정위 위탁을 받아 다양한 평가 업무도 진행 중이다. 대기업이 중소협력업체들과 체결한 공정거래협약의 이행 성과를 평가하는 ‘협약이행평가’와 기업들의 공정거래 자율준수 실적을 평가하는 CP 등급평가가 대표적이다. 도입 초기 호응이 컸던 CP 제도는 우수등급을 받아도 기업이 받는 혜택이 줄면서 인기가 다소 식었으나 최근 정치권에서도 인센티브 부여를 법제화하자는 법안(윤관석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됐다. 중소사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피해예방을 위한 공정거래교육도 실시 중이다.

△조정원은 현재 6개 분야(공정거래·가맹사업·하도급·대규모유통업·약관·대리점)에서 조정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참여하는 52명의 위원 중 원장을 제외한 51명이 비상임위원이라 신속한 사건 처리 및 안정적 심의에 한계가 있다. 조정협의회 상임위원 운영방안을 포함한 분쟁조정제도 효율화를 위한 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 또 분쟁조정업무 권한을 이양 받은 지자체와의 정기적인 교류도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대화와 타협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분쟁해결 문화도 확산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