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망했던 뻘짓 '전기차' 살려낸 건

by오현주 기자
2017.03.15 00:14:01

오늘날 '혁신'된 과거 '헛짓'
1800년대 이미 전기차 나와
200년 지나 테슬라 나서
전자담배도 38년만 재등장
누군가 헛소리 미래혁명돼
절대믿음 버리고 틀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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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씽크: 오래된 생각의 귀환
스티븐 풀|400쪽|쌤앤파커스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테슬라모터스의 전기자동차 돌풍이 만만치 않다.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대중의 발밑에 전기차라는 걸 제대로 깔았다는 점에서는 그럴 만하다. 그런데 전기차가 과연 인류역사에서 ‘아무도 듣고 보지 못한’ 별천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나. 천만에. 이미 1800년대 후반 전기차는 길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미국에서만 3만대가 등록한 아이디어 상품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한 세기가 넘도록 전기차는 어디에 있었나.

당시 화석연료는 지금보다 풍족했다. 이것이 발목을 잡았다. 굳이 전기로 왔다 갔다 하는 차가 필요치 않았던 거다. 결정적으로는 배터리. 1회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42㎞에 불과했다. 양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의 휴대폰 배터리 수백개를 매달고 다니는 것 같았으니. 결국 얼마 뒤 인류 최초의 전기차 회사는 폐업신고를 하고 만다.

그후에 엘론 머스크란 인물이 등장했다. 테슬라의 CEO 자리에 오르며 “기존의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곤 ‘기존’의 전기차를 ‘더 좋게’ 뚝딱뚝딱 다듬어 세상에 내놨다. 다 차려진 밥상에 ‘배터리기술’이란 숟가락을 얹은 셈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긴 했지만.

전기차가 그랬듯 전자담배도 ‘한 번 망한’ 상품이다. 1965년 미국인 허버트 길버트가 처음 시판한 발명품. 그런데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당시는 흡연권장시대가 아니었나. 담배회사의 광고 공세를 못 당해냈던 거다. 2003년 중국인 약사 한리가 특허를 내 다시 불을 댕긴 전자담배는 ‘신상’이 아니었던 거다. 금연바람 덕을 봤다지만 흡연인 듯 금연인 듯 헷갈리는 콘셉트가 뒤늦게 먹혔다.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때 만난 아이디어’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특히 예전에 ‘가짜’ ‘엉터리’ ‘헛소리’ 등으로 폄하했던 것들에 애정을 기울였다. 한때 비웃음을 당하고 ‘뻘짓’ 취급을 받았던 주장·발견이 어느 순간 타당성을 인정받는 건 물론 혁신으로 추앙받았다고 역설했다. 굳이 과학·기술에만 한정할 일도 아니다. 비즈니스·역사·문화·의학·군사·철학·심리학 등에서 복원한 ‘알고 보니 진국’인 사례가 넘쳐난다고 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있다? 없다?

그럼에도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갈등 중이란다. 저자가 따져보니 대립각을 세운 입장은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정말 새로운 창조나 혁신이 만들어진다’는 것. 물론 ‘새로울 것 없는 태양 아래 어떻게 창조·혁신을 만드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저자가 방점을 찍은 건 ‘옛것에 대충 다 있더라’다. 최첨단 기술이니 진보니 하는 것도 저만치 던져둔 인문학이나 복고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더란 소리다. 그러니 제아무리 대단한 그림도 과거에서 빠진 퍼즐조각을 채우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고.

그래도 태양 아래 진짜 새로운 게 나오기도 한다. 시계·나침반·망원경·뉴턴의 중력이론 등이 그런 거 아닌가. 하지만 저자가 볼 때 과학의 책무이자 영광은 ‘상식을 거스르는 행위’다. 예를 들어 여기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순도 100%의 진리란 게 있다. 어떤 물체든 희미한 패턴을 이룬 원자로 구성돼 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뱅뱅 돈다 등. 하지만 세상에는 단 한 번만 일어났던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늘에 빛이 번쩍한다든가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다든가 하는. 물론 다시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 건 맞는가. 이미 일어났는데. 일어났을 가능성은 100%인데.

‘사촌이 산 땅’이라 배가 좀 아프긴 할 테지만 ‘베스트셀러는 좋은 운을 타고난 우연한 상품’ ‘상관관계 같은 건 원래 없더라’는 식으로 여기는 게 속은 편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 속 편한 생각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핫트렌드라고 하는 것도 사실 어떤 맥락에서 재발견하고 재가공한 것에 불과하다는 거다. 과거 어떤 특정한 시대적 마인드와 조화를 이루면서 대유행을 만들어낸 것뿐이라고.



▲네 헛소리가 혁명이었어

종횡무진 헤집은 ‘구식’ 아이디어에는 고전도 빠지지 않는다. 기원전 500년대 중국 고대국가인 오나라에 살았던 손자가 쓴 ‘손자병법’이 대표적. 숨겨둔 전술을 휘둘러 드라마틱하게 이기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란 ‘싸움의 한 수’는 이후 2300년이 지난 1980년대 냉전기류를 탄 서구에서 적극 권장했다. 당시 정치가 개인의 책략을 칭송하는 분위기였던 덕분이다. “모든 전투는 싸우기도 전에 승패가 결정 나지.” 영화 ‘월스트리트’에도 나온 이 대사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세계적인 패권다툼이 벌어지는 은밀한 세계에서 손자병법은 ‘첩보활동의 지침서’가 됐다.

요즘 가수가 새 앨범을 발표하는 가장 쿨한 방법을 아는가. 올드한 LP로 발매하는 것이란다. CD니 디지털음원이니 다 필요 없단 얘기다. 또 연금술도 현재까지 살아 있는 주요 아이템이라고 했다. 현대과학자가 열광하는 중세 연금술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는데 “용의 피와 검은 용을 불태운 가루를 섞으면 황금나무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이 허무맹랑한 정보를 토대로 황금빛 프랙탈 구조를 얻기도 또 검증하기도 하는 중이다.

아이디어는 어떤 핀으로도 고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지금 떠들어대는 누군가의 헛소리가 미래의 혁명이 될 수 있단 것만 알아두란 말이다.

▲“일단 물러서면 더 멀리 뛸 수 있다”

역사는 무질서하다. 규칙도 없다. 대체로 어수선하다. 그런 와중에 몇몇 천재가 나타나 인류를 구했다. 멸망할 판국에 도약이니 진화니 하는 그물망을 던져 세상을 끄집어 올린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몇몇 천재뿐인가. 저자가 눈여겨본 건 그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기타 등등의 어정쩡한’ 사람·기술·사상이다. 때론 미개하다고, 때론 뭐 그런 게 다 있느냐고 무시했던 것들이 적절한 시기를 타고 나와 ‘공동진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늘 아이디어를 좇고 있나. 그렇다면 ‘절대 믿음’은 버려야 한다. 아이디어는 움직이는 표적과 같단다. 직선으로 행진하면 그나마 나을 건데 이리저리 몸부림까지 친다. 그 동요를 잡아내는 것이 바로 리싱크(rethink)란다. 다시 고려하고 생각의 방식을 바꾸는 것 말이다.

무기를 들었다면 다음 단계는 전진일 터. 저자는 “일단 물러서면 더 멀리 뛸 수 있다”는 프랑스 속담을 인용했다. 맞다.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으로는 절대 보폭을 늘릴 수 없을 거다. 뒤돌아보면 두 가지는 얻는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퍼즐조각과 찾지도 않은 퍼즐조각. 어찌 맞출 건가는 ‘뻘짓’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