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깊은 한국은행]②돈을 쓰게 할 방법이 없다
by김정남 기자
2016.01.25 05:30:30
한은의 근본적 고민…"통화정책 영향력 작아진다"
선진국도 비슷한 난관 봉착…중앙은행 무용론까지
| 최근 3년 전국 가구(2인 이상)의 평균소비성향 추이. 단위=%. 자료=통계청 |
|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지난 21일 오전 9시께 한국은행 본관 8층. 장병화 부총재와 서영경 김민호 윤면식 부총재보의 비서들은 출근한지 얼마 안 돼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이주열 총재 쪽이었다. 1시간 후 긴급 회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장민 조사국장, 홍승제 국제국장, 허진호 통화정책국장, 신호순 금융시장국장 등도 호출을 받았다.
오전 10시께.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총재가 갑자기 회의를 주재한 건 취임 이후 처음이었다고 한다. 새해 벽두부터 요동치는 ‘차이나 리스크’를 한은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함이었다. 이 총재는 “시장과 더욱 원활히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한은의 상황인식은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게 한은의 딜레마다. 이 총재 등은 중국발(發) 위험에 따른 통화정책도 함께 논의했다. 중국이 무서운 건 오히려 대(對)수출 타격으로 인한 실물경제 위험이 꼽힌다. 한은도 어떻게든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다. 잇단 기준금리 인하에도 경기를 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닥쳐오는 더 큰 파고는 통화당국에 불길한 징조다.
한은 사람들은 “당국의 정책 영향력이 점점 작아지고 있음을 느낀다”면서 “이는 전세계 중앙은행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알게모르게 돈을 쓰게 할 것인가. 저성장 시대, 한은 등 각국 중앙은행은 이 중대한 물음 앞에 길을 잃고 있다. 이리저리 돈을 흩뿌려 놓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한은에 따르면 6개월 후 소비지출을 전망하는 소비자심리지수(한은 집계)는 지난해 12월 107로 그해 4월(106)과 비교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봐도, 지난해 3분기 가계평균소비성향은 사상 최저인 71.5%를 기록했다.
이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네 차례나 낮춘 기간과 겹치는 것이어서 더 주목된다. 돈의 값을 낮춰도 정작 기업은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지갑을 열 의사가 없다는 것인데, 차이나 리스크가 실제 불어닥치면 이런 경향은 더 심화할 게 뻔하다. 한은 관계자는 “선진국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데도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은의 ‘진짜 실력’은 불황기 때 드러나게 마련이다. 한은의 주업무는 ‘안정’이다.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가 과열되면 식히고, 얼어붙으면 데워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는 게 찬물을 끼얹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점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금리 인상의 충격파가 인하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크다”고 했다. 금리를 올리는 약발은 각계의 반발 속에 곧바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쓰던 돈을 안 쓰게 하기는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사상 최저인 금리를 더 내린다고 해서 각 경제주체의 심리를 움직이긴 어렵다. ‘아, 이 정도면 돈 좀 써도 되겠구나’라고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능력에 있어 한은은 낙제점을 면하기 힘들다.
특히나 금리가 낮아질대로 낮아진 만큼 다음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고민의 깊이는 더해지고 있다.
이는 한은만의 난관은 아니다. 유럽과 일본의 중앙은행이 최근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선진국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행한 돈 풀기가 효과를 보이지 못했음에도, 또다시 그 미봉책을 꺼낸 것이다.
다만 역시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다. 오히려 현재의 세계경제 불안 자체가 ‘커진 몸집’(양적완화)에 가려진 ‘어두운 민낯’(공급과잉 등) 탓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그래서 확 풀린 통화에 연명하는 ‘불순물’을 조정해야 한다는 구조조정론이 비등하다. 하지만 이 역시 중앙은행이 앞장서기엔 만만치 않다는 한계론도 동시에 나온다.
이 때문에 이번 다보스포럼에서는 중앙은행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처럼 중앙은행은 더이상 시장을 구원할 수 없다는 회의론이 분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