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지하경제 양성화 드라이브..백운찬 "한템포 빨리가겠다"
by문영재 기자
2013.05.07 06:20:00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관세청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책상 앞에 화이트보드를 가장 먼저 갖다 놨어요. 직원들이 자신의 할 일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조치를 취했죠.”
백운찬(사진) 관세청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백 청장은 관세청 본청이 있는 정부 대전청사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서울세관 집무실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각종 회의와 행사가 서울에서 자주 열리기 때문이다.
서울세관 집무실에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는 바로 백 청장의 아이디어였다. 바쁜 일정을 쪼개 직원들로부터 보고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짧은 시간 정확하게 업무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끝에 나온 산물이다.
백 청장은 “(직원들이) 보고할 때 단순하게 자료를 읽어주는 것만으로는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며 “화이트보드가 아주 긴요하게 쓰인다”고 자랑했다. 직원들은 청장실에 있는 커다란 화이트보드와 매직펜을 활용해 지금도 백 청장에게 복잡한 관세 업무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3월18일 백 청장이 관세청장으로 취임한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게 관세청 안팎의 평가다. 직원들은 과거에 비해 조직이 좀 더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백 청장은 “정책을 만들던 기획재정부와 달리 관세청은 집행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국민들의 필요를 사전에 충족시키기 위해선 한 템포 빨리 움직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백 청장은 기재부에서 세제실장을 지냈다.
백 청장은 새 정부 국정과제인 ‘지하경제 양성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재빠르게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단도 꾸렸다. 이 조직은 출범 한 달만에 1871억원을 징수, 올해 목표치의13%를 달성했다. 그는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단은 발족 이후 매주 실적을 점검하고 있다”며 “올해 목표 1조5000억~2조원의 세수 확보는 무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청장은 특히 수출입 기업에 대한 정보를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모두 공개할 방침이다. 그 동안 국세청과 관세청은 정보공개에 있어 소극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는 “관세청은 기업이 영업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은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정보는 기본적으로 국민들에게 모두 알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관세청의 최근 행보에 시샘어린 시선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의욕 과잉’이 아니냐는 비판도 들린다. 신용카드 1인당 면세한도인 400달러 이상을 결제한 사람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받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방안은 개인정보침해 논란과 함께 현실화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전문가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에 대해 백 청장은 “카드 정보를 받아 과세에 활용하겠다는 것은 당위성 측면에서 올바른 방향”이라고 항변했다. 현재 외국에서 물건을 산 사람의 정보는 관세청에 1년에 한 차례밖에 제공되지 않아 과세활용이 녹록지 않다는 거다. 백 청장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받아 모든 사람을 감시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렇게 제공받은 데이터를 쌓아 외국에서 고가의 물건을 자주 사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체크하겠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백 청장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해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대해서는 일상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분명히 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강화 움직임과 맞물려 관세청도 기업에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했다. 백 청장은 “지하경제 양성화는 정상적인 기업을 잡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세금을 내야하는 데 안 내는 것, 정상적으로 내야 하는데 덜 낸 것을 찾아 세금을 제대로 내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청은 국내 세수의 30% 정도를 맡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새 정부 국정과제로 떠오르면서 국세청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기관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러나 최근 관세청과 국세청의 사이는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특히 정보 공유 확대를 요청한 관세청과 이에 시큰둥한 국세청 간에 미묘한 잡음이 감지되면서 호사가들 사이에선 양 기관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백 청장은 이와 관련, “국세청과의 정보공유 확대는 이미 실무자들끼리 협의를 하고 있다”며 “잘될 것”이라고 말해 우려를 일축했다.
국내에서의 업무 진행은 관세청으로선 한계가 있고, 반대로 국세청의 경우 국외에서 한계가 있는만큼 효율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선 양 기관이 정보공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백 청장의 생각이다.
백 청장은 국세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세청이 부각이 덜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백 청장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기업의 수 등에서 차이가 나다보니 관세청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관세청은 국경을 넘나드는 영역에서 세금징수뿐 아니라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된 원산지 확인, 밀수감시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력충원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백 청장은 “최근 대폭적인 인사를 단행했다”며 “업무 추진을 위한 모든 준비가 마무리된만큼 외부에서 봤을 때 ‘살아 움직이는 관세청’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56년 경남 하동 출생.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해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행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해 국세청 일선세무서를 거쳐 옛 재무부 세제실로 전입,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 준비단에 참여했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등을 거쳐 소득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관세정책관, 재산소비세정책관, 세제실장으로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완화, 노후차교체 세제지원 등 굵직한 정책을 입안했다. 추진력이 있고 화통하며 뒤끝 없는 깔끔한 성격으로 두루 신망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