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문득] 여행의 속도

by강경록 기자
2025.01.10 06:00:01

빠르게 가는길, 그리고 느리게 가는 마음
강원~경상도 동해선으로 3시간 단축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도 여행의 일부
고속열차 창밖 풍경 천천히 느껴보길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간편하게’.

세상은 늘 속도를 요구한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사례가 동해선 개통이다. 이제 강원과 경상도의 바다와 산을 가로지르며 3시간 이내로 시간을 절약하게 됐다.

빨라진다는 것은 편리하다. 그렇다고 빨라진다는 것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네 인생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늘 남보다 뒤처지는 것을 걱정한다. 그래서 ‘빨리’가 일상에 베여 있다. 사실 남들보다 빨리 가는게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조금 헤매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잘못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지 강릉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 자체로 여행이었다. 바다를 달리는 차장 너머로 보이는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 낡고 소박한 휴게소에 멈췄을 때 느껴지는 비릿한 바닷 바람의 냄새, 그리고 도로 옆으로 드문드문 보이던 어촌 마을의 풍경 등등. 동해선 개통은 이런 여정을 조금씩 잊게 할 게 분명하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고속열차 안에서의 풍경은 단지 스쳐 가는 배경일 뿐,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느낄 여유는 없다.

동해선을 따라 달리는 ITX-마음(사진=코레일)
반대로 느린 여행은 ‘멈춤’과 ‘생각’을 허락한다. 그리고 여행자를 강제로 ‘지금’에 머물게 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는 빠른 여행과 달리 느린 여행은 우리가 바쁜 일상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마주하게 한다. 그것이 자연의 풍경이든,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이든, 혹은 그저 자신과의 고요한 사색이든 말이다. 이런 변화들을 천천히 살피다 보면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도 보인다.



빠름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동해중부선이 가져올 변화는 분명 확실하다. 강원과 경상 지역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삼척과 같은 외딴 지역은 여행의 문턱이 낮아진 덕분에 더 많은 여행객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빠름이 모든 답이 돼선 안된다. 속도에만 매몰되다보면 여행의 본질인 ‘여정’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 또한 여행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조금 느린 옵션을 선택해 보길 권한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느리게 여행하다 보면 마치 숨을 고르듯,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여행에서 빠르다는 것과 느리다는 것은 서로 상충하는 개념은 아니다.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 우리는 이 두 가지 옵션을 상황에 따라 현명하게 활용하면 된다. 그리고 빨라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면 조금 속도를 늦추고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아보면 될 터. 가령 기차가 목적지로 달리는 동안 잠시 창밖 풍경을 음미해 본다면 그 속에서 잃어버렸던 감정과 경험의 조각들이 다시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궁극적으로 여행은 단순히 어디에 가느냐의 문제가 아닌, 그곳에 어떻게 가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느냐의 차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행을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