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한파, 내년 더 매서워진다

by김응열 기자
2022.12.02 06:00:00

시장조사기관들 "내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 3~4% 역성장"
디스플레이 장비 투자도 63% 급감…120달러→44억달러로
삼성전자도 영업이익 추락…SK하이닉스는 적자전환 경고

[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글로벌 경쟁력 1·2위를 다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향한 한파가 내년부터 더 거세질 전망이다. 각종 시장조사기관들은 내년 세계 반도체 매출 전망치를 올해보다 낮춰 잡고 있고, 디스플레이 투자 역시 위축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 핵심 산업이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를 피하지 못하면서, 국내 기업의 실적도 하락세가 불가피해졌다.

1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내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액은 5960억달러로 추산된다. 올해 전망치는 6180억달러인데 이보다 3.6% 낮아진다. 올해는 지난해 5950억달러보다 4%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년에는 하락세로 전환한다는 게 가트너의 분석이다.

지난 7월만 해도 가트너는 내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액이 6230억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에 따른 가처분소득 감소가 전자제품 수요를 떨어트리는 양상이 이어지면서 전망치를 수정했다.

리차드 고든 가트너 부사장은 “반도체 수익의 단기 전망이 악화됐다”며 “세계 경제의 급격한 침체와 소비 위축은 내년 반도체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도 비슷한 분석을 냈다. WSTS는 내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액이 5565억6800만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올해 5801억2600만달러와 비교해 4.1% 줄어드는 규모다.

WSTS도 가트너처럼 전망을 바꿨다. 지난 8월 WSTS는 내년 반도체 시장이 4.6%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위축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시장이 역성장할 것이라고 기존 관측을 바꿨다. WSTS는 “물가 상승과 수요 감소에 따라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다”고 설명했다.

이들 조사기관은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매출액 낙폭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트너는 16%, WSTS는 17%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도 내년 상황이 암울하다.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츠(DSCC)는 전 세계 디스플레이 장비투자가 내년 44억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투자 규모는 120억달러인데 이보다 63% 급감한다. 내년 디스플레이 장비투자 전망치는 2012년 이후 최저치다. DSCC는 “디스플레이 시장의 업황이 나빠져 패널 공급업체들이 신규 투자 결정을 늦추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전자 서초사옥(왼쪽)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사진=연합뉴스)
관련 산업을 주도하는 국내 기업들의 내년 실적도 덩달아 어둡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의 내년 연간 매출액 컨센서스는 306조3375억원으로, 올해 추정치 309조605억원보다 0.8% 줄어들고 영업이익은 47조4180억원에서 33조6985억언으로 28.9% 꺾일 전망이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000660)는 매출액의 경우 46조3237억원에서 37조6968억원으로 18.6% 줄어들고, 영업이익은 8조5488억원에서 -3007억원으로 적자전환이 예상된다. 디스플레이 업계 불황에 더해 중국의 추격을 받는 LG디스플레이(034220) 역시 내년에도 영업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황민성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코로나 봉쇄가 풀려 보복소비가 늘고 있지만 가처분소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공급망 불안으로 재고를 늘린 반도체 기업 고객사들도 경기 둔화에 대응해 더욱 재고를 줄여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메타버스나 자율주행 등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재도약은 단기간에는 가능성이 낮고 해결할 과제도 많다”며 “단기간 반도체 수요의 추세를 바꿀 만한 계기는 보이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내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역성장은 메모리 판가 하락과 수요 둔화 및 공급과잉에 따른 파운드리 매출 부진 영향”이라며 “전방 수요 부진과 재고 조정이라는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지정학적 리스크와 중국의 지역 봉쇄 등으로 연중 부진한 글로벌 TV 수요가 회복 신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LCD 패널의 어려운 업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국내 패널업체들은 OLED 등 하이엔드 패널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TV 업체들의 프리미엄 비중 확대 속도가 둔화되고 있어 난관에 봉착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