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위드 코로나', 함께 갈 수 없는 말

by윤종성 기자
2021.09.09 05:30:01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정부와 언론 등 여기저기서 ‘위드 코로나’라는 말을 사용하니 혹시라도 방역에 문제를 일으킬까 하여 방역 당국에서 이 말 사용을 피해달라고 요청했다. 공공언어에서 외국어나 모호한 용어를 사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이 용어 자체가 정확한 정의가 없는데 너무 포괄적이고 다양한 의미로 활용된다”며 “확진자 발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없앤다는 의미로도 표현이 되고 있어 방역적 긴장감이 낮아지는 문제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단계적 일상 회복 방안’이라는 말을 검토 중이란다. 찬성이다.

그런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이미 몇 차례 이 말을 사용했다. 지난 8월 23일에 정 청장은 “9월 말이나 10월 초부터는 위드 코로나 준비 작업, 검토 작업을 공개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고, “위드 코로나로 방역전략의 전환을 하려면~”, “준비 작업을 지금부터 진행해야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이~” 등 서너 차례 ‘위드 코로나’라는 말을 사용했다. 당시엔 이런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유럽 어느 나라에서 처음 이 말을 썼다고는 하지만, ‘위드’라는 단어가 가진 모호함을 무시하고 그 말을 따라 하기 시작한 건 ‘포스트 코로나’를 사용했던 전력 때문이리라. 대통령을 비롯해 무수한 정부 관계자와 언론인, 유력인사들이 ‘포스트 코로나’를 수없이 입에 올렸으니 비슷한 꼴의 영어로 된 ‘위드 코로나’는 포스트 코로나의 정당한 계승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위드 코로나’. 멋있게 들리기는 하는데 뜻은 모호하다. 흔히 암과 같은 중병에 걸렸을 때 그 병을 완치하기 어렵다면 생각을 바꿔 그 병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삶의 건강성을 지키려 한다. 그것은 가까이 다가온 죽음을 마음 비우고 받아들인다는 초연함과 더불어 투병 이전과는 다른 삶의 태도로 선택하고 지킨다는 뜻을 가진다. 하지만 한 개인의 병이 아니라 무서운 속도로 사회 전체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와 함께 산다는 ‘위드 코로나’의 의미가 일반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까? 지금처럼 마스크가 몸의 한 기관이 되어버린 상황은 물론이고 거리두기 4단계가 우리의 일상이 된다는 뜻인가, 코로나를 옆에 끼고 살아도 될 정도로 결정적 위험은 없다는 뜻인가?



확실히 ‘위드 코로나’는 어떤 사람에게는 억측을 부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막막한 불안감을 줄 수 있는 말이다. 사실 ‘포스트 코로나’도 그랬다. 포스트가 ‘이후’라는 뜻이지만, 포스트 코로나가 ‘코로나 유행 이후’인지 ‘코로나 종식 이후’인지 모호했고, 실제로 두 가지 의미로 혼란스럽게 쓰였다. ‘위드 코로나’는 ‘포스트 코로나’의 이런 모호함마저 이어받았다.

말 한마디에도 늘 신중한 질병관리청조차 이런 함정에 빠진 것은 정부 당국자들과 관공서에서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영어 남용 분위기 탓이리라. 나라 경제를 끌어올린다는 한국판 뉴딜 정책의 주요 사업명은 거의 모두 영어 단어로 되어 있고, 그 용어들이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생활 정책의 이름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위드 코로나 같은 말을 사용하는 일이 무슨 위험이나 문제를 부르리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 위드 코로나 사태에서 보았듯이 국민의 안전을 다루는 말, 재산과 복지와 온갖 권리와 의무를 다루는 공공언어가 우리나라 공식어인 한국어가 아닌 외국말로 표현될 때는 정책의 효율이 떨어지거나 혼선을 일으키기 쉽다. 더구나 외국어 약자인 어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협하기도 한다. 모든 국민에게 고루 방역의 손길을 건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코로나 방역 당국에 늘 고마움을 느끼고, 이분들이 처음엔 무심코 썼다가도 곧 국민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바꾸어 쓰려 애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앞으로도 국민들이 뜻을 바로 알아채기 어려운 전문용어나 외국어 신조어를 무심결에 입에 담는 일은 삼가길 부탁한다. 코호트 격리, 팬데믹, 트윈데믹,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등 그런 말들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그 결과로 원활한 방역에도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