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길의뒷담화]2000조 국가부채 폭탄 돌리기
by최훈길 기자
2021.04.12 05:00:00
역대 최대 증가폭, 사상 최악 국가재정 적자
코로나 감안하더라도 눈덩이 증가세 우려돼
미래세대 부담인데도 정권말 대책 오리무중
재정 쓸 땐 쓰더라도 미래 대비 대책 필요해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대선이 1년도 안 남았습니다. 정치인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표만 관심이 있지요. 차기정부 나랏빚이 얼마나 될지 관심이나 있을까요? 포털에 기사가 뜨면 반짝 관심을 보였다가 곧 사라지겠지요.”
최근 만난 정부 고위관계자는 ‘눈덩이 나랏빚’ 우려에 이같이 말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가계자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사에 관심이 높습니다.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이나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뉴스는 조회수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든 상황에서 나랏빚 걱정은 후순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랏빚이 걱정됩니다. 규모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20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재무제표상 국가부채는 1985조 3000억원으로 2000조원에 육박했습니다.
전년보다 241조 6000억원 증가한 규모입니다.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71조 2000억원,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2조원을 기록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봐도 국가재정이 100조 안팎 적자 상태인 것입니다.
이를 두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확장재정을 감안해서 봐달라고 했습니다. 국가채무와 국가부채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과거에 빌린 돈인 ‘채무’(debt), 채무에 미래에 줄 돈까지 합산한 ‘부채’(liabilities)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를 합한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이를 나랏빚으로 부릅니다. 국가부채는 이같은 국가채무에 앞으로 줘야 할 공무원·군인 연금충당부채까지 포함한 것입니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846조 9000억원, 지난해 국가부채는 1985조 3000억원입니다.
| 왼쪽부터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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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는 당장 갚아야 할 돈이 아닌데다, 줄이려고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줄일 수 있습니다. 연금개혁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됩니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 때문입니다. 국가부채는 2017년에 1555조 8000억원에서 지난해 1985조 3000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3년 만에 429조 5000억원이나 늘어난 것입니다. 전년대비 증가폭(241조 6000억원)은 국가 재무제표가 작성된 2011 회계연도 이후 사상최대입니다. 지난해 통합·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도 각각 역대 최대입니다.
더 걱정이 되는 건 미래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나랏빚 증가속도를 제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재정준칙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4개월째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확장재정 옥죄기 법안’, 국민의힘은 ‘맹탕준칙’이라며 반발하는 가운데 왜 재정준칙이 중요한지는 제대로 된 사회적 공론화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연금 개혁 필요성을 제기한 문재인 정부는 뒷짐을 쥔 채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 임기가 1년 밖에 안 남았으니 이번 정부에선 물 건너갔다고 봐야겠지요.
기재부가 작년 9월2일 발표한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사학연금은 2029년, 국민연금은 2041년 보험 수입보다 연금 지급액이 큰 적자로 전환됩니다. 매년 수조원씩 적자가 늘면서 2060년에 공무원연금은 최대 36조원, 군인연금은 최대 10조원 적자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당시 기재부는 이같은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하면서 “연금 및 보험 부문의 지속가능성이 부족하다.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기재부·인사혁신처·국방부 간 구체적인 연금개혁 논의는 없습니다. 연금개혁 없이 이대로 계속가면 눈덩이처럼 미래세대 부담이 늘어날까 걱정됩니다.
이르면 금주 중으로 개각이 발표됩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유력 대권후보들 간의 레이스도 본격화할 전망입니다. 문재인정부 마지막 국무총리·경제부총리·경제부처 장관들의 소신과 대선후보들의 경제관이 뚜렷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눈앞의 급한 불은 꺼야겠지만 미래세대에 짐을 떠넘기지 않기 위한 고통 분담을 말할 수 있는 분들이 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 국가부채는 2017년에 1555조 8000억원에서 지난해 1985조 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3년 만에 429조 5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단위=조원 [자료=기획재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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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의 1986년 재정통계편람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를 합산해 작성한다. 확정된 빚으로 통상적으로 이를 나랏빚으로 부른다.
= 국가채무에 공무원·군인 연금충당부채 등 앞으로 줘야 할 비확정부채까지 포함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회계에도 민간처럼 발생주의 회계원칙을 도입해 국가재정을 관리하라는 IMF 권고에 따라 도입됐다.
=국가가 공무원, 군인에게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총액을 추산한 것이다. 2020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의 연금충당부채는 향후 77년(2021~2097년) 간의 지출액을 추정한 금액이다. 연금충당부채에 연금보험료 등 연금수입은 반영돼 있지 않다.
국가재정법 86조(재정건전화를 위한 노력)에 따르면 정부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가 적정수준인지 등 건전성을 판단하는 명확한 수치가 우리나라 법령에 규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속가능한 재정을 구축하기 위해 재정준칙을 마련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가 2020년 10월 공개한 재정준칙에 따르면 국가채무 비율을 GDP 대비 60% 이하로 유지하고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를 GDP 대비 -3%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다. 기재부는 관련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2020년 12월 정부안으로 발의했다.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의 차이를 차감한 것이다. 국제비교를 할 때 사용하는 수지다. 정부는 2020년 10월 재정준칙을 발표하면서 관리재정수지가 아니라 통합재정수지를 국가재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의 차이를 나타내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사학연금·산재보험·고용보험 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것으로 당해연도의 실질적인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제외한 것은 △기금의 수입이 중장기 미래 지출을 위한 것으로 당해연도의 재정활동 결과로 보기 어렵다는 점 △기금의 성숙도에 따라 대규모 흑자나 적자가 발생해 당해연도의 재정활동을 판단하는데 효과적이지 않은 점을 고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