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혁신의 길
by권오석 기자
2019.08.14 05:00:00
“스타트업은 현재에 발 딛고, 과거와 싸워서,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가까운 스타트업 창업자의 말인데, 스타트업이 하는 일을 이보다 잘 설명하는 말이 없는 것 같아 강연 등에 종종 인용하곤 한다.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얼마 전 회원사 1000개를 돌파했다. 2016년 9월 50여개 스타트업이 뜻을 모아 시작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일군 소중한 성과다. 1000명이 넘는 창업자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든든한 마음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미션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와 세상을 혁신하는 일’이다. 스타트업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혁신을 도와 더 큰 혁신을 이루면 우리 사회 전체가 성과를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담은 것이다.
이런 혁신의 길을 가장 먼저 걸어갔던 ‘한국 벤처의 대부’ 이민화 카이스트 겸임교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 벤처 1세대로 의료기기 국산화를 선도한 메디슨을 창업했고, 벤처기업협회를 결성해 초대 회장을 지내면서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에 기여했다. 아울러 중소기업청의 ‘기업호민관’을 비롯해 카이스트 교수,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혁신기업을 옹호하고 후배들을 키워내는 데 매진했다. 그가 남긴 족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원로로서 기억되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의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격려하며 함께 혁신가의 길을 걸어가던 대선배이자 동료로 인식되던 분이었기에 황망함과 아쉬움이 더욱 크다.
개인적 인연은 많지 않지만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과 규제혁신을 논의하는 토론회, 콘퍼런스 등 수많은 자리에서 함께 만날 수 있었고 진지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에 큰 힘이 되기도 했었다. 일면식이 없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도 먼저 전화를 걸어 ‘당신이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니 열심히 하라’며 조언을 해줘 용기를 얻었다는 청년 창업자들이 주변에 많을 정도로 그는 영원한 ‘청년’ 혁신가였다.
그런 그의 뜻을 이어가는 것은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가 과거와 싸워서 미래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우리 스타트업 생태계는 양적·질적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혁신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제를 혁파해 스타트업들에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하고,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확산해 더 많은 청년들이 혁신을 통해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는 더 많은 혁신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까지 4차 산업혁명과 공유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발언을 이어갔다. 지난 7월 17일, 정부의 택시제도 개편방안이 발표되자 “4차 산업혁명은 죽었다”며 거침없이 울린 경종은 우리가 계속 곱씹어야 할 숙제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보다 제도 혁명이다. 신규 산업과 기존 산업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량이 4차 산업혁명에서 국가의 역량이다. 이미 주요 국가에서 천명된 원칙은 국가는 신규 산업과 기존 산업 중 어느 편의 손을 들어주지 말고, 소비자의 손을 들어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는 차량공유와 원격의료를 원하고 있는데, 국가의 공유경제 정책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택시 사업자와 의료 사업자들의 표가 소비자 전체보다 중요하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다.
“소비자의 후생이 국가의 이익이다. 산업 혁신으로 얻은 국가 이익의 일부를 기존 산업의 구조조정에 투입하는 것이 국가가 수행할 갈등 조정 역할이다. ‘타다’에 택시기사를 의무화시키는 규제야말로 기존 산업의 이권을 지켜주기 위해 소비자를 희생시킨 행위다. 소비자 희생 대가를 선거에서 표로 보여주는 행동만이 한국의 정치적 일탈에 경종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소비자여 단합하라.”
그가 울린 경종에 화답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일, 그것이 혁신의 길이고 오늘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