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끈 日강제징용 사건…'재판거래 의혹' 제기 3개월만에 결론
by한광범 기자
2018.10.31 01:00:00
4차례 재판서 쟁점 안된 ''개인청구권 소멸 여부'' 결론에 5년3개월 걸려
대법관 11명 "전범기업 배상"…권순일·조재연 "청구권 소멸"
|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미소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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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소송 14년 만에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의 배상 책임 확정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앞선 네 번의 재판과 같은 결론인 “한일협정에 의해서도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위해 5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이춘식(94)씨 등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2012년 대법원 소부의 판결 취지를 그대로 따랐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7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결론 이후 5년 만인 지난 7개월에야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당시는 재판거래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던 시기였다. 5년 넘게 소부에서 심리가 이어지던 이번 사건은 전원합의체 회부 후 3개월 만에 결론이 나왔다.
이번 재상고심의 최대 쟁점은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 여부였다. 이 쟁점은 앞서 네 번의 재판에서 모두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내려졌으나 재상고심에선 대법관 사이에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됐다.
이 사건의 개인청구권 소멸 여부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이기도 하다. 상고법원 도입에 총력을 기울이던 양승태 사법부가 청와대 설득 카드로 강제징용 재판을 이용했다는 의혹이다. 실제 통상적으로 결론이 빨리 나오는 재상고심과 달리 이번 사건은 별다른 이유 없이 5년 넘게 심리가 이어졌다.
검찰 조사 결과 박근혜 청와대는 2013년 7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후 양승태 대법원에 뒤늦게 “한일협정으로도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법원 판결에 불만을 드러냈다. 박근혜 청와대는 법원 판결이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체결된 한일협정에 위배된다는 입장이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자신의 공관으로 불러 재판과 관련한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 자리엔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도 참석했다. 외교부는 박근혜정부의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이 재판거래 의혹 속에서 결론을 유지했다. 11명의 대법관 의견으로 개인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7명은 “한일협정 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엔 이씨 등이 구하고 있는 위자료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씨 등이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구하는 게 아니다. 일본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과 관련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라고 결론 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 협상과정에서도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고 이에 따라 양국 정부는 일제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기택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개인청구권 부분에 대해선 2012년 대법원 판결이 결론을 낸 상황에서 이를 변경할 예외적인 상황이 없었으므로 기속력에 따라 추가심리 자체가 필요없이 상고기각이 됐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소영·이동원·노정희 대법관도 별개의견을 통해 다수의견과 같은 결론을 내리면서도 판단을 약간 달리했다. 이들은 “이씨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면서도 “이씨 등의 개인청구권이 한일협정만으로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개인청구권 인정 의견들에 대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개인청구권이 소멸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됐다”며 “이씨 등이 일본 국민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 소송을 제기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판단했다
앞선 재판에서 쟁점이 됐던 △일본 법원 판결의 효력과 기판력 △신일본제철의 일본제철 승계 여부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 여부에 대해선 대법관 전원이 앞선 대법원 판결과 같았다. 구체적으로 일본 법원 판결은 대한민국 사회질서에 반해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한국법을 적용할 경우 일본제철이 신일본제철을 승계한 것이 명백하며, 개인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