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김종필 전 총리를 보내며
by최은영 기자
2018.06.26 05:00:00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23일 한국 정치사의 산증인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별세했다. 김 전 총리의 죽음은 한국 정치사의 한 시대가 완전히 마감됨을 의미한다. 바로 3김(金) 시대가 이제 ‘역사’가 됐다는 것이다.
3김 시대는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3김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산업화와 독재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는 이제는 고인이 된 김종필(JP) 전 총리가, 반독재 투쟁은 고 김대중(DJ)·김영삼(YS) 전 대통령으로 각각 상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DJ가 진보 진영을, YS와 JP가 보수 진영을 대표했었다. 이런 부분들은 3김 시대가 갖는 역사적 정당성의 중요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3김 시대의 그늘도 있었음은 분명하다. 바로 지역감정에 기반 한 지역 분할구도가 그것이다.
지역주의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 이탈리아에서도 지역주의는 존재한다. 이런 지역주의는 자신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감정은 배타성을 전제로 한다. 즉, 타 지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특징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역감정은 정치적인 분열을 초래한다. 지역감정은 사회 통합의 걸림돌이 될 뿐만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모순과 같은 사회적 주요 현안을 덮어버리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런 지역 분할 구도는 3김 시대의 그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3김의 상징성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보수 야당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의 상징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지금은 보수의 진정한 어른이 필요한 시점인데 그런 어른이 사라졌으니 당분간 보수는 더욱 헤맬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진 셈이다.
보수의 관점에서 지금 김 전 총리 같은 큰 어른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그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다. 김 전 총리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때로는 정권 차원에서 그를 매장하려 할 때도 있었지만, 그는 매장당한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다시 재기했다.
그런데 그의 재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도박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3당 합당과 DJP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DJP 연합이나 3당 합당 모두, JP가 아니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사안들이다.
특히 DJP 연합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도박이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는 처음으로 진보와 보수가 연합했기 때문이다. DJP 연합에 의한 한국 정치사 최초의 정권교체는 JP가 산업화 세력의 상징을 넘어선 존재임을 보여준다. 즉, JP의 도움이 없었다면 DJ가 대권을 쥐기 힘들었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JP는 민주화라는 측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의 이런 정치적 도박은 결단력과 역사 인식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여기서 그의 정치적 재기의 두 번째 특징이 나온다. 바로 과도한 욕심을 절제하며 역사성에 입각한 현실적 차선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 역시 대권을 잡고 싶었을 게다. 정치하는 사람치고 대권을 생각해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전략적 이유로 대선에 출마한 적은 있지만, 대권에 대한 진정한 욕망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대선 출마를 이용해 DJP 연대와 같은 사상 초유의 연대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절제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정치적 행위이다.
JP가 보여준 이런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의 보수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부터 나온다. 지금 보수 야당은, 절제는커녕 야욕에 사로잡힌 ‘욕망의 덩어리’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버릴 때는 과감히 모든 것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던 JP가 다시 생각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JP가 지금 우리와 작별한 이유도, 이 점을 자신이 평생 추구했던 보수 세력에게 상기시키려 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