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인터뷰①] "좋아하는 것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예술"
by김유성 기자
2015.12.27 07:55:19
[얼꽝 김기자의 1인방송 도전기] 12번째 이야기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한국 게임 일러스트레이션 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다. 업계 1.5세대인 김 대표는 한국을 비롯해 타이완, 중국 등에서도 팬이 있을 정도다.
엔씨소프트(036570)에서 대형 온라인 게임 ‘블레이드앤소울’의 일러스트 작업 전반을 총괄했던 김 대표는 30여명의 스텝들과 함께 모바일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를 개발중이다.
데스티니 차일드는 기존 모바일게임과 달리 캐릭터가 중심이 된 게임이다. 캐릭터를 수집하고 키워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으로 김형태만의 일러스트 색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타 일러스트레이터에서 게임 개발자, 게임 개발사 경영인으로 변신한 김형태 대표를 이데일리는 지난 23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김 대표에 대한 인터뷰는 지면용과는 별개로 온라인 전문(全文)과 함께 영상으로 구성돼 출고됐다.
먼저 김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안정적인 엔씨소프트를 나와 창업을 했다고 전했다. 엔씨소프트에서 자신의 경력을 이어 나갈 수도 있지만 자신이 만들고 싶은 모바일 게임을 밑바닥부터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프트업을 창업한 것이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에 대한 설명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예술이라고 했다. 때문에 에로티시즘이 베어 있는 신체의 아름다운 부분을 과감하고 과장되게 표현했다. 이는 김형태 만의 일러스트로 귀결됐다.
△엔씨소프트에서도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엔씨소프트 배제현 부사장님, 그리고 김택진 사장님하고도 많은 얘기를 나눴고, 특히 배 부사장님하고 친한데, 정말 제가 직접적으로 물어봤어요. “어떻게 해야되냐?” “내가 이 다음에는 뭘 할 수 있을까?” 배 부사장님도 “시장이 워낙 혼란스러운 상태인데, 회사가 그렇게 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일수 밖에 없다”며 여러 제안을 해주셨는데, 블록버스터 MMORPG를 또 만드는 길이 있었어요.
수십명의 스텝들과 함께 타이틀을 만드는 것도 대단히 영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트리플A급 타이틀을 만든다는 것은 적어도 6~7년 이상의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 되고, 그 시간을 또 해서 지금보다 멋있는 타이틀을 만드는 게 의미는 있겠지만, 너무나도 고된 길이고 반복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생겼어요.
그리고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것은, 엔씨소프트에서 굉장히 좋은 사람들과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 모바일 게임을 만든다면 바닥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굳이 엔씨소프트에서 그 좋은 인력들과 함께 만들어도 좋은 게임을 만들겠지만 내가 스스로 내가 판단하는 방향에 따라서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리스크와 리워드가, 창업하는 쪽이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그런 고민을 솔직히 배 부사장님한테 말씀을 드렸고 창업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셨어요.
△엔씨소프트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밤을 새고 일하다가 출근하는 사람한테 인사하고 그 자세로 일하다가 또 출근하고 또 인사한 적도 있었거든요. 한 명한테 두 번 인사한 거예요. 자리에 앉아서. 거의 편의점 도시락 먹고 하면서.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굉장히 미친듯이 열심히 했었는데, 그때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안했어요. 그런데 창업을 하면 잠들기 직전까지 회사 생각밖에 못하게 됩니다.
아마 창업하신 모든 분들이 똑같을 꺼예요. 그러다보니까 일요일에도 못 놀아요. 너무 놀고 싶은데 놀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회사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런 게 좀 다른 것 같아요.
△다행히도 넥스트플로어 김민규 대표님께서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김민규 대표님이 제가 만드는 게임을 보고싶다는 의지를 갖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게임 제작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며 투자를 해주셔서 그래서 다행히도 다른 분들과 비교해 수월하게 개발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지요.
△사실 전 소프트맥스 면접을 봤다가 떨어졌어요. 그 당시에는 면접이 뭔지도 몰랐고. 그 다음에 만트라라는 회사를 들어갔는데, 이 회사가 중간에 망했어요.
그래서 붕 떠 있을 때, 마침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라는 게임을 소프트맥스에서 제작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중에 유명한 ‘토니 타케자키’라는 분이 일러스트를 하다가, 일본 분이시다보니까 아무래도 일을 수월하게 하기 힘들어 공백이 있었는데, 그 쪽의 일을 (이전에 면접봤다가 떨어진) 저에게 다시 외주를 주게 된 것이죠.
제가 그 공백을 채워나가게 되면서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로 프로의 길을 걷게 됐고요, 그게 계기가 돼 창세기전을 맡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연재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7화 분량까지 원고를 재 놓고 연재를 준비했었는데 그때 사회 분위기가 ‘만화는 청소년에 큰 해악이다’라고 분위기가 되면서 단행본 판매량도 줄고 만화책 태우는 퍼포먼스도 하면서 사회적으로 만화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퍼졌어요.
그러면서 제가 그리는 만화도 연재가 불투명해지기도 하고 그때 만화가들이 힘들어하면서 떠나는 시기가 되기도 했죠. 90년대 후반 청소년보호법이 생기던 시기입니다. 그때 많은 만화계 인력들이 규제나 사회적 안좋은 인식이 없던 게임 업계로 몰려갔고요, 저도 그때 워낙 게임을 좋아하다보니까 그때 게임계로 진출하게 된거죠.
△콘텐츠가 아무래도 동서양으로 나뉘고, 아무래도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죠. 그때가 일본 버블시기를 통해서 만화 애니메이션이 발전하던 때였는데, 일러스트레이터로 정체성을 갖게 된 시기는, 그런 일본만화는 대부분 ‘선화’ 위주였어요.
제가 그때 CG컬러링을 배우고, 미대를 가게 되면서, 양감표현이나 서양화적 표현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그런 일본에서 시작한 선화 스타일에 서양식 페인팅 기법이 접목돼 일러스트레이터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고, 그게 유저 분들이나 문화를 접하시는 분들에게 인상을 주지 않았나 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웹툰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힘들게 죽어가던 만화시장이 뉴미디어를 통해 부활하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지만 저는 지금 만화와는 길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만화를 그리겠다고 하면 굉장한 ‘만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화라는 게 그렇게 쉽게 그릴 수 없다라는 것을 정말 전 잘 알고 있거든요.
저는 만화를 그리지 않은 지 오래 됐기 때문에 좀더 게임 제작자에 가깝죠. 하지만 콘텐츠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콘텐츠를 만화로 표현하는 것인지 게임으로 표현하는 것인지 차이가 있을 뿐이지’ 유사한 점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원소스멀티유즈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행하려고 생각중이고. 그러려면 기둥을 잡아주는 큰 하나의 줄기인 IP가 강력하게 있어야 돼요. 그게 아마 우리 ‘데스티니차일드’ 게임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서두르진 않아도 이 IP가 좀더 생명력을 가지고 확고하게 자리잡으면 멀티유즈는 어느때든 가능할 것이라고 보입니다.
△저는 터부시 되는 위치가 매력적인데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부분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키치적인 에로티시즘이나 페시티즘에 가까운 부분도 있다고 보는데요. 그런 것들을 왜 드러내지 못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중요하고 정말로 매력적인데.
그리고 모든 문화가 이것을 꺼려야할 이유가 있나라는 생각을 해서, 특히 우리가 민감해하는 부위를 둘러싸고 있는, 깊게 생각했을 때 에로티시즘이 충분히 베어 있는 부분들, 에로티시즘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움이 베어있는 부분들, 예를 들자면 배의 굴곡이나, 골반에서 승마살이라고 하죠 허벅지쪽으로 이어지는 살이라든지, 대퇴근에서 이어지는 근육과 근육 건 사이에 있는 지방의 곡선 이런 것들을 과장해서 좀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니까.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예술한다고 하기 보다는, 우선은 그런 것을 거리낌없이 표현을 했고. 깜짝 놀라신 분들도 계신거죠.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제가 좋아하니까. 좀더 심도 깊게 자유롭게 표현했고 그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