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민구 기자
2014.10.02 06:10:01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小米)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가 한국 스마트폰 제품보다 절반 이하 가격으로 최신형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소비자들은 ‘반토막’ 최신형 중국산 스마트폰에 환호하며 이를 사기 위해 매장 밖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중국 자동차 수출 1위 업체 체리자동차(奇瑞汽車· 치루이기차)는 한국 자동차시장을 겨냥해 360만원대 ‘QQ3’를 한국시장에 출시했다. 이 가격은 국내 자동차업체 경차가격의 절반 수준도 안된다. 체리자동차는 가격대비 성능을 자신하며 한국내 인기몰이를 자신하고 있다.
위의 예는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전제로 한 가상 시나리오다. 그동안 우려했던 중국 제조업의 역습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특히 한중FTA 타결때 최대수혜주로 예상됐던 자동차와 전기전자 부문에서 한국이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제조업 분야는 한국이 우위’라는 기존 공식이 깨지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월가 투자전문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며 외친 ‘블랙 스완(the Black Swan:검은 백조)’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정부도 한중 FTA를 통해 600억달러(약 63조원)에 달하는 한국과의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며 벼르고 있어 중국산 제품의 한국시장 융단폭격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샤오미, 화웨이, 체리자동차의 습격은 ‘일시적 반란’이 될 수도 있다. 삼성·LG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주요업체의 글로벌 브랜드가치와 시장점유율을 감안할 때 중국업체 진출이 국내 시장 판도를 송두리째 바꾸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중국업체의 급부상은 한국 제조업이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임계점)를 맞는 중대 전환점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기술격차는 최근 수년간 많이 줄었고 중국 제조업 기술이 한국을 앞지를 날도 멀지 않았다. 한국산 제품이 중국산과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는데 가격만 비싸다면 소비자들이 국산제품을 외면하는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 제조업 경쟁력의 급상승으로 한국은 이제 ‘샌드위치’가 아닌 ‘넛크래커(nutcracker:호두 까기 기계)’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샌드위치가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후발국 추격을 우려한 것이라면 넛크래커는 후발국 기술 추격에다 선진국 역공이 더해지는 상황이다.
마치 호두를 호두까기 기계로 눌러 까는 것처럼 한국이 선진국과 개도국 틈에서 깨져버릴 수도 있다. 한국이 ‘넛크래커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결국 중국이 따라오지 못할 차세대 고부가가치 먹거리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한중 FTA가 우리경제에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정교하고 치밀하게 대처해야 한다.
‘인구 13억명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외환보유액 4조달러의 세계 최대시장’이라는 천편일률적 관점에서 벗어나 ‘신(新) 차이나 쇼크’를 맞고 있는 한국 제조업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 스마트폰시장에서 샤오미가 삼성전자를 제친 것처럼 중국과의 FTA가 한국기업에게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강을 꿈꾸는 중국몽(中國夢)을 일궈가고 있다. 한중FTA가 값싸고 경쟁력 있는 중국산 제품이 한국시장을 초토화하는 비극이 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수출부진을 겪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블랙스완급’ 충격을 극복할 시간적 여유가 녹록치 않다.
김민구
gentle@/글로벌마켓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