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종오 기자
2013.12.09 07:25:00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서울 최대 판자촌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이 이른바 ‘개발 이익 공유형’으로 개발된다. 주민을 위한 임대주택 건축비 전액을 사업 시행자인 SH공사와 토지주가 함께 부담하는 새로운 도시개발 방식이 도입되는 것이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임대주택 임대료가 인근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져 세입자 부담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8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서울시 산하 SH공사의 ‘구룡마을 개발계획(안)’에 따르면 서울시는 구룡마을 개발 사업비에 이곳에 짓는 임대주택 1250가구의 건축비 1352억원을 집어넣기로 했다. 기존 도시개발사업은 사업 시행자가 개발 구역 안의 땅을 택지 등으로 개발한 뒤 처분하면 종료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구룡마을처럼 도시 개발과 임대주택 건설을 같은 SH공사가 맡았더라도 두 사업은 별개로 취급된다. 회계 기준이 나눠져 있어 개발사업을 정산하고 임대주택 건설은 새로 비용을 들여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임대주택 건축비를 구룡마을 개발 과정에서 땅주인들과 SH공사가 얻게 될 이익으로 충당할 방침이다. 일종의 개발 이익 환수다. 이 같은 방식이 도시개발사업에 도입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는 개발 뒤 전체 땅값의 평균 49.3%를 임대주택 건축비를 포함한 사업비로 부담하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도시개발사업 구역(땅값의 평균 30~40%)보다 사업비 부담이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구룡마을은 현재 일부 환지 방식(돈 대신 땅으로 보상하는 것)을 섞은 혼용 개발이 추진 중이다. 혼용 개발은 기존 토지주에게 개발된 땅 일부를 돌려주고 나머지는 보상금을 주고 수용하는 방식이다.
서울시 안은 감정가 10억원짜리 땅을 가진 지주가 환지를 신청할 경우 개발 뒤 22억원 상당의 땅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여기에 부담율 49.3%(약 11억원)를 뺀 11억원만 보상해주겠다는 것이다. SH공사 관계자는 “현재 환지 계획상 임대주택 건축비는 SH공사와 땅을 돌려받은 지주가 약 7대 3 수준으로 부담하게 된다”며 “따라서 향후 임대주택을 지을 때 실제 들어가는 건축비는 ‘제로’(0원)”라고 말했다.
이번 계획안은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특혜 논란을 없애고 원주민을 모두 재정착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구룡마을의 관할 자치구인 강남구는 지난 3월 서울시의 일부 환지 방식이 투기 세력에게 막대한 개발 이익을 안겨준다며 방식 변경을 공개 요청한 바 있다. 개발 계획 입안권과 환지 계획 인가권을 쥔 강남구가 이처럼 사업에 반대하면서 구룡마을 개발은 현재까지 공회전 중이다.
서울시 계획안대로 개발사업이 진행되면 임대주택 임대료도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구룡마을 내 전용면적 49㎡짜리 임대아파트는 보증금 2400만~2600만원, 월세 19만원에 공급 가능하다. 인근 강남구 세곡지구(보증금 4300만원·월 31만원)와 송파구 장지지구(보증금 3900만원·월 25만원)의 같은 면적 임대주택보다 보증금은 최대 1900만원, 월세는 12만원 정도 저렴하다.
강남구 주장을 반영했을 때와 비교해서도 임대료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강남구 안대로 구룡마을 땅을 모두 사들여 개발할 경우 보증금은 5300만원, 월세는 35만원으로 껑충 뛴다. 건축비가 별도로 들고 SH공사의 토지 보상비도 증가해 택지 조성원가가 3.3㎡당 1185만~1277만원에서 1300만원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세부 계획 보완 및 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사전 자문을 거쳐 내년 1월께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2월부터 강남구와 개발 계획 수립을 위한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기존 문제점을 개선한 대안을 내놨다면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