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경원 기자
2013.08.27 07:10:00
[이데일리 김경원 기자] 10년 전 ‘2003년 카드대란’ 이후 국내 소비자들의 금융 소비패턴이 많이 바뀌었다. 엄밀히 따지면 국민성이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카드대란 전에는 소비자들이 대출채권보다 카드 대금을 먼저 갚았다. 카드 연체이자가 비쌌던 탓에 연체를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카드대란 이후에는 상황이 바꿨다. 카드 대금 연체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들이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사회문제로 확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카드대란은 2003년 한 카드회사 부실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단초가 됐다. 카드사가 망하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판단한 연체자들이 배짱을 부리면서 연체율이 높아져 결국 카드대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앞서 5년 전인 1998년에 발생한 외환위기도 카드대란과 무관하지 않다.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를 극복할 때 카드 규제가 풀리면서 카드 발급이 급증했다. 카드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미래의 부(富)를 현재에 당겨쓰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
IMF 위기 때 국내에서는 금 모으기 운동이 펼쳐졌다. 이를 통해 약 227t의 금을 모았다. 전국에서 4가구당 1명 꼴인 351만여명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모인 금은 대부분 수출해 2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처럼 IMF 이전까지 우리나라 국민은 빚보다 자산(금)을 더 선호했다.
지금도 알짜 부자들은 지갑에 현찰만 넣고 다닌다고 한다. 카드를 쓰면 빚으로 생활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들이 부동산 등에 투자할 때는 적은 자기자본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렛대 효과’를 철저하게 이용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투자하지는 않는다. 미래에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판단이 설 때만 투자한다. 가격 상승 기대치와 이자율을 꼼꼼하게 따져서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민들의 금융 생활방식은 사뭇 다르다. 이들은 신용카드를 여러 장 가지고 있고 대부분 전·월셋집에 살고 있다. 자본금도 적어서 금융권에서 차입할 수 있는 금액은 많지 않다. 결국 지렛대 효과를 활용하고 싶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오는 28일 전·월세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전세 세입자를 매매 수요자로 유도하고 월세 세입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정부는 이를 위해 대출의 지원 요건을 완화하고 금리도 인하해 줄 방침이다. 이와 함께 고액 전세입자의 정부 지원은 제한할 전망이다. 고가 주택의 전세 지원이 매매 수요로 전환하는 것을 막아 전세난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결국 정부가 서민들에게 빚을 지고 내 집을 마련하라고 주문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2003년 한국은행이 작성하기 시작한 개인 가처분 소득 기준 가계 부채 비율은 106.7%였다. 카드사태가 수그러들면서 2004년 103.4%로 감소한 뒤 8년 연속 상승세를 탔다. 지난해 말 이 비율은 135.6%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가계 부채가 위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한국의 가계 빚은 980조원에 이른다. 가계부채 잔액은 사상 최대 수준이며, 이런 추세라면 올해 1000조원을 넘길 가능성도 크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대출금리를 낮춰주면서 빚을 내 집을 사라고 권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서민들에게 집을 사라고 금융 지원에 나서는 것보다는 집값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게 더 중요한 때라는 것을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