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07.22 11:45:41
[조선일보 제공] 도쿄에서 4년간 머물다가 얼마 전 한국으로 복귀한 기업체 직원이 한숨을 쉬었다. “애들을 일본에서 4년 굴렸더니 한국에서 바보가 된 것 같다”면서 일본에서 아이들을 일본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게 하고 함께 공부를 시키다가 한국 학교에 보냈더니 꼴찌에 가까운 성적표를 들고 왔다는 것이다. “도대체 몇 등을 했는데?”라고 묻자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하겠다”고 했다. “다시 일본에 보낼 수도 없고….” 애당초 일본에 데려오지 말고 엄마와 서울에서 살도록 할 걸 그랬다는 후회였다.
도쿄 주재원들이 한국에 돌아갈 때쯤 가장 큰 걱정거리가 아이 문제다. 세상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한국 아이들 틈에서 적응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아이들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데려올 때보다 오히려 걱정이 더 크다. 기자가 도쿄에서 공부하던 8년 전만 해도 차별, 언어, 이지메(왕따)를 얘기하면서 “일본 학교 괜찮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돈이 들더라도 신주쿠에 있는 국제학교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을 신주쿠 국제학교를 보내는 것은 왕따 걱정 때문이 아니라 공부 안 시키기로 유명한 일본 학교에 아이들을 맡겼다가 지진아로 만들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왕따 걱정 역시 요즘엔 한국으로 돌아가는 부모들이 더 많이 한다.
비슷한 걱정이 집 문제다. 도쿄에 있는 기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집 테크’ 열풍에 동참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이다. 일본으로 올 때 집을 팔고 온 사람들은 “거지가 돼 고향에 돌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강남, 비(非) 강남이 여기서도 짝이 갈려 있다. 수완 좋은 주재원 중에는 도쿄 체류 기간 동안 아내가 한국을 들락거리면서 ‘강남 입성(入城)’에 성공한 경우도 있다. 선진국 도시인 도쿄에선 다들 비슷한 동네에서, 비슷한 체재비를 받으면서, 비슷한 것을 먹고 살던 사람들이 오히려 서울로 돌아가는 순간 빈부격차가 확 나버리는 것이다.
일본에도 물론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가 있다. “도쿄의 강남구?”라고 물으면 “세타가야구”를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시부야구”라고 해도, “미나토구”라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신주쿠구”라고 해도 좋다. 우리처럼 모든 부자들이 강남구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선 “너 어디 사니?”라고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다. “세타가야구”라고 답해도 “와!” 하고 놀라지 않는다. 적어도 “강남은 아니야”라는 풀이 죽은 대답은 안 들을 수 있다. 이런 평등한 환경에서 몇 년 지내다가 한국에 들어가면 여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일본에서 일본 사람처럼 슬렁슬렁 살다 한국에 들어가면 아이도 학교에서 바보, 부모도 사회에서 바보 취급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래서 도쿄 주재원 중에는 뒤늦게 집을 구하러 강남을 기웃거리듯, 귀국을 앞두고 허겁지겁 아이들에게 집중 과외 교습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좋게도 생각할 수 있다. ‘한국 아이들이 더 공부를 많이 하니 앞으로 20년쯤 지나면 우리가 일본을 누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다. 일본이 선진국에 진입한 것은 1960년대 일본 학부모들의 교육 열풍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도대체 사는 게 뭐고 행복이란 뭔가를 생각하면 그냥 씁쓸하다. 인간의 본질적 측면에서 우린 일본 국민에 비해 확실히 피곤하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