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초여름에 분 청량한 '아쟁 바람'

by이윤정 기자
2023.07.03 06:00:00

심사위원 리뷰
신현식 아쟁독주회 '훈풍'
종묘제례악 '영신' 음악으로 재탄생
신현식류 긴산조 발표…장엄한 제의 음악도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자연에서 삶의 철학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물과 바람이 떠오른다. 물은 노자의 도덕경에 순리성과 자연성을 최고의 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바람은 부드럽고 온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파괴의 힘이 있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연주하는 신현식이 아쟁독주회 ‘훈풍’(薰風, 6월 22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던진 화두는 바람이었다. 흐르는 바람을 ‘풍류’(風流)라 하고 풍류를 행하면서 삶의 이치와 공존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식자들은 열광하게 된다.

신현식의 음악에는 인간이 항상 자리잡고 있다.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관계에 위로와 희망을 주며 더불어 살고자 이번에는 바람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프랑스 시인 폴발레리의 시구절 ‘바람이 분다...살아야 겠다’가 지치고 메마른 영혼에 큰 바람을 일으킨 것처럼 신현식의 음악회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고 적중했다.

신현식 아쟁독주회 ‘훈풍’의 공연 모습(사진=신현식 제공).
이번 공연에서 선보인 3곡을 보며 신현식의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생각해봤다. 우선 음악회를 열고자 하는 뜻이 좋았고(발심·發心), 음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절히 갈구하였고(구도·求道), 하루 종일 밤새도록 명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연습을 거듭하였다(탁마·琢磨).



첫 곡인 ‘종묘제례악을 위한 시나위’(cosmos)는 종묘제례악에서 신을 맞이하는 절차인 ‘영신’(迎神)의 뜻을 음악으로 새롭게 재탄생시킨 곡이다. 코스모스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의 세계를 말한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느껴지는 우주의 환상을 음악으로 그려냈다. 종묘제례악 영신 가사의 의미와 뜻을 담아 신현식이 직접 노래함으로써 감동을 선사하고 음악회의 격을 높였다.

두번째곡으로 ‘윤윤석제 신현식류 아쟁 긴산조(훈풍)’가 연주되었다. 신현식의 음악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모두 세명이다. 아버지 신상철(국가무형문화재 줄풍류 명예보유자)과 어머니 선영숙(전남 무형문화재 제47호 김병호류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 그리고 스승인 윤윤석이다. 윤윤석의 자유분방한 창의적 음악은 신현식에게 그대로 물려졌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스승 윤윤석 명인의 녹음기록을 통해 산조와 즉흥 가락들을 정리하면서 본인의 가락을 추가한 신현식류 긴산조를 이번 무대에서 발표한 것이다. 신현식류 아쟁 산조는 아쟁산조의 한일섭류 계보에 덧대어 음악사의 한 장을 열게 되었다.

마지막 곡은 ‘위로: 혼을 위한 카덴자’(Cadenza for Soul)로 진도씻김굿 음악을 차용해 신현식의 색깔로 제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사물놀이의 명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김덕수는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기꺼이 장구를 잡아 음악에 힘을 실어주었다. 박병천의 아들이자 현재 진도씻김굿 전승교육사인 박성훈이 소리를 맡았다. 가야금 박순아, 피리 윤형욱, 거문고 고보석, 양금 정송희의 음악을 신현식이 아쟁으로 이끌며 장엄한 음악으로 전율을 느끼게 했다.

신현식을 보면 ‘논어’의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란 구절이 생각난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과 함께 한다’라는 의미다. 신현식의 인성과 덕성을 나타내기에 제격이다. 초여름에 부는 훈훈한 바람을 일으킨 신현식의 이번 음악을 떠올리다 보면 시원한 청량감으로 무더위를 비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