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 명목으로 더 교묘해져...법조계 하루빨리 자정 나서야 불신 해소

by송길호 기자
2021.11.10 05:30:00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박주희 변호사
변호사 등록 않고 고문활동, 보수 챙겨
변호사법상 의무 회피하는 새 형태
국민들, 모든 사법절차에 '전관' 오해
대다수 변호사들 자괴 허탈감 느껴
서둘러 '전관예우 악용'뿌리 뽑아야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박주희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변호사] 변호사가 재판이나 수사절차 등 법으로 정한 절차에서 변호를 하기 위해서는 소속 지방변호사회에서 발급받은 경유증표를 붙인 위임장 또는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해야 한다. 경유증표에는 각각의 일련번호가 기재돼 있고, 변호사는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경유증표를 사용한 사건의 정보를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즉, 소속지방변호사회는 변호사 수임사건의 정보와 수를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문’업무는 법원이나 검찰을 거치지 않기에 위임장이나 선임계를 제출할 필요도 없고, 변호사법상 공직퇴임변호사의 수임 자료제출 의무도 제외된다. 또한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보고해야 하는 수임사건에도 고문·자문사건은 포함되지 않는다. 더욱이 자문을 제공하는 방식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의뢰인의 법률 질의에 법률 의견서를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방식이 자문 업무의 대표적인 방식이지만 관계 기관에 로비를 하거나 사건 관계자와의 친분으로 사건을 무마해주는 업무도 ‘자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2016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 로비 의혹에 연루되었던 검사장 출신 홍만표도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채 검찰 인사와의 ‘전화통화’만으로 수사를 무마시켜주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전관들이 처리하는 사건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드러날 수 없는 사건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이번 ‘대장동 사태’에선 아예 변호사로 등록하지 않고 고문 활동을 함으로써 변호사법상 제한과 의무를 회피하는 새로운 형태의 업무 방식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전관예우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국회에는 ‘전관예우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법안들이 발의된다. 그러나 변호사의 업무와 변호사법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불완전한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덕에 전관들은 ‘자문’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전관예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전관예우의 문제점 중 하나는 전관예우의 실체에 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전관예우가 존재하는 것인지, 대체 전관예우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2018년 대법원이 발표한 <전관예우 실태조사 및 근절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변호사의 75.8%는 전관예우가 있다고 답했다. 반면, 판사는 23.2%, 검사는 42.9%만이 전관예우의 존재를 인정했다. 변호사와 판·검사 모두 수사와 재판에 관여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임에도 전관예우의 존재에 대한 생각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수사와 재판 절차에서의 전관예우가 ‘무엇’인지에 관하여도 변호사와 판·검사의 판단이 다르다. 판·검사들은 대체적으로 전관이 맡은 사건에 ‘결과’적 특혜를 주는 것이 전관예우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결론만 소신대로 판단한다면 전관예우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에 참여하는 당사자나 변호사는 철저히 을(乙)일 수밖에 없고, 판·검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결과에 특혜를 주지 않는다 해도 전관에게 작은 ‘절차’적 특혜를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혹여나 불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이며 재판이 불공정하다고 느끼게 된다.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포털 커뮤니티에는 ‘재판부가 재판 3일 전에 서면을 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면박을 줬는데, 상대방 전관은 재판 하루 전에 서면을 제출해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라든지 ‘재판 끝나고 나오는데 판사와 전관이 가볍게 목례하는 걸 보고 의뢰인이 걱정한다’ 등등 재판 진행 과정에서의 사소한 차별과 특혜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글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이렇듯 당사자와 변호사가 말하는 전관예우란 판·검사가 생각하는 전관예우의 범위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이다. 이 같은 인식의 차이가 있는 한 전관예우의 폐단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변호사의 대다수가 전관예우가 있다고 믿는다고 해서 모든 판·검사가 전관을 예우한다거나 모든 사건에서 전관예우가 작용한다고 믿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법과 정의에 따라 공정한 판단이 이뤄지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나 ‘대장동 사태’처럼 법조게이트 사건이 벌어지면 그 피해는 사건과 관련 없는 법조인들에게 돌아간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처리되는 사건 중 극히 일부임에도 한번 논란이 되면 국민들의 법조인에 대한 신뢰는 와르르 무너지고, 모든 사법 절차에는 전관이 없으면 안된다고 오해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 가장 허탈감과 자괴감을 느끼는 이들중 한 부류가 기득권에 관계없이 성실히 일을 해오던 젊은 변호사들이다.

작년 한 언론사에서 전관과 비(非)전관 변호사들의 승소율을 비교 분석한 결과, 결과는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모든 사건에 전관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편견은 여전하고 대부분의 평범한 변호사들은 이러한 편견과 싸우며 일하고 있다. 이들에겐 뉴스에 나오는 전관들의 터무니없는 수임료는 딴 세상 이야기이며, 서면 작성이나 변론 능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사건에서도 전관을 찾는 의뢰인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장동 사태’같은 사건이 한번 터지면 그간의 노력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법률시장을 더욱 혼탁하게 만드는 건 마치 모든 사건에 전관예우가 작용한다는 국민들의 오해를 악용하는 자들이다. 여전히 서초동에는 ‘부장판사’, ‘부장검사’ 출신을 내세워 법원과 검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영업을 하는 전관 사무실이 줄지어 있다. 실제로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는 따로 있는데 위임장에 들어갈 전관의 이름만 빌려주고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일은 여전하고, 그 과정에서 수임료를 지출하고도 전관 변호사와 상담 한번 해보지 못하거나 사건의 난이도나 규모에 비해 불필요하게 비싼 법률비용을 지출하는 피해자들도 나타난다.

전관예우를 하루 빨리 뿌리 뽑지 않으면 ‘전관이면 다 된다’는 거짓된 기대감을 악용하는 자들의 배만 불리게 되는 셈이다. 대다수의 변호사는 대장동 사태에 자괴감과 허탈감을 느끼지만 누군가는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공고해지는 계기라며 좋아할지 모른다. 법조 비리가 터지면 터질수록 법조계에 대한 국민 신뢰는 줄어들지만 줄어드는 그 신뢰만큼 ‘연줄’과 ‘권력’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전관예우가 문제되면 전관들도, 현직 판·검사들도 전관예우는 없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이번처럼 법조에 대한 국민 신뢰를 깎아먹는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선배 법조인들의 행동에 법원과 검찰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법조인 스스로 철저한 자성과 자정 노력이 없는 한 법조에 대한 불신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연세대 법학과 △사법시험 52회, 사법연수원 42기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 △상명대 문화기술대학원 겸임교수 △행정안전부 국민포상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