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바뀌는 통상조직 안 돼…韓, ‘룰 메이커’ 도전하라”

by최훈길 기자
2021.08.24 06:00:00

[만났습니다]유명희 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①
“韓 통상 과제는국제룰을 만드는데 뛰어드는 것”
“트럼프-바이든 본질 다르지 않아, 압박 계속돼”
“반도체, 탄소중립, 전자상거래 리스크 대비해야”

[이데일리 최훈길 임애신 기자]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통상 규범을 만드는 ‘룰 메이커’에 도전했으면 합니다. 그동안 빠르게 경제 발전을 이룬 우리나라가 이제는 소프트파워 국가로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도전했던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3일 서울 중구 순화동 이데일리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통상 과제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앞서 유 전 본부장은 29년간의 공직을 마무리한 지난 6일 이임식에서 “국가의 명운을 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7일 이데일리 사옥에서 인터뷰를 했다. △1967년 울산 출생 △정신여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학사·행정학 석사, 미국 밴드빌트대 로스쿨 △행정고시 35회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자유무역협정(FTA)정책과장 △주중국대사관 1등서기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대표부 파견(참사관)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실 외신대변인 △산업부 자유무역협정교섭관 겸 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추진기획단장 △산업부 통상정책국장·통상교섭실장·통상교섭본부장 (사진=이영훈 기자)
유 전 본부장은 “이 말을 한 것은 ‘룰 메이커’ 길을 개척해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WTO의 최대 화두인 수산 보조금 금지와 전자상거래 협상은 ‘룰 메이커’로서 한국의 시험대다. WTO 협상으로 규범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수산업, IT 수출업계에 ‘태풍’이 올 수도 있다. 친환경으로 가는 2050 탄소중립도 룰에 따라 미치는 경제적 여파가 상당하다.

이 때문에 유 전 본부장은 “앞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여 이대로 가면 우리 기업의 수출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정부가 국제적인 룰이 정해지기 전에 만드는 단계부터 뛰어들어야 우리 기업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전자상거래 분야처럼 뚜렷한 국제적인 규범이 없는 사각지대도 있어 우리나라가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렇게 역할을 하려면 통상 조직·인력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게 유 전 본부장의 지론이다. 특히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상 조직이 흔들리고 바뀌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 전 본부장은 “해외 선진국들은 한우물을 판 전문가들이 협상에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순환보직에 따라 새로 온 공무원이 명함 주면서 소개하곤 한다. 국제무대에서의 제 역할을 하도록 통상 전문성을 지속 발전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유 전 본부장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지금까지 잘하지 못한 엄마 역할부터 제대로 하고 싶다. 해외에 출장 가 있는데 아이가 울면서 전화할 때도 있었다.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번에 큰딸이 대학에 입학하는 데 함께 있을 것이다. △정견발표가 인상 깊었다. 애초에는 진지하게 임했다. 그런데 알고 있던 외국인들이 ‘딱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다른 나라는 농담도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진지함을 버렸다. 아들 얘기를 했다. 우리 아들은 프랑스·스위스·독일 멤버들과 밴드를 꾸려 유럽 곳곳을 다니며 K팝 콘서트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얘기를 꺼낸 뒤 ‘WTO가 이처럼 자유롭게 왕래하는 세계화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출마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경험을 얘기할 때도 반응이 좋았다. 개도국들에게 희망을 주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국제통상 질서를 저해하는 조치였다. 일본은 법원 판결이라는 비경제적인 사회적 쟁점을 경제에 끌어 들였다. 상호 신뢰 하에 세계적인 공급망이 형성됐는데, 전 세계 공급망 체계에 부정적인 선례를 남겼다. 우리나라는 민관이 의견을 모아 소재·부품·장비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았다. 한일 관계는 앞으로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양국 관계가 정상화돼서 원상복귀 돼야 한다. △트럼프 정부든 바이든 정부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 ‘미국 중산층, 평범한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하겠다’는 게 미국 통상·외교의 핵심이다.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산업을 키우려고 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에 대한 압박을 계속할 수도 있다.



△탄소중립, 친환경 관련 압박이나 이슈도 계속될 것이다. 철강, 시멘트 등 우리 산업계도 대비해야 한다. 갑자기 유럽 등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환경 조치가 부족하다며 세금을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 그것이 탄소국경조정제도든 다른 이름의 무언가든 계속 나올 것이다. 통상 쪽에서 미리 흐름을 읽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고 적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게 통상의 몫이다. △직접 만난 해외 인사들이 직접적으로 ‘기후악당’이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해외에서도 한국이 제조업 비중이 높고 짧은 시간에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알고 있다. 오히려 해외 통상 담당자들은 한국 게임, 음악, 영화, 음식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 통상 담당자들은 이런 한류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나라을 상황을 얘기하곤 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스스로 탄소중립 속도를 늦춘다고 해서 좋아할 일은 아니다. 전 세계적인 흐름에서 비춰 뒤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서 가야 한다.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7일 이데일리 사옥에서 인터뷰를 했다. (사진=이영훈 기자)
△연말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든 수산보조금을 없애는 건 아니다. 남획을 방지하고 수산 자원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보조금 제도를 선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협상이라는 게 마지막에 몇개 이슈를 함께 패키지로 타결하는 경우가 많아, 막판까지 봐야 한다.

△특히 전자상거래 분야를 대비해야 한다. 물건뿐 아니라 데이터도 거래 대상이 된다. 데이터와 서비스가 결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이를 규정하는 룰은 없다. 각국마다 전자상거래 룰이 다르다. 이 때문에 수출하는데 애로사항을 겪는 중소기업이 많다. WTO가 세계적으로 통일된 규범을 만들고자 전자상거래 협상을 하고 있는데 몇 년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룰이 정해지기 전에 우리나라도 룰을 만드는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

△통상의 전문성을 키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는 같은 언어를 쓰는 지역군이 있지만 한국어를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다른 나라가 우리를 대변해줄 수 없다. 우리나라 스스로 우리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끊임없이 공부했으면 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현직 떠난 지 얼마 안 됐다. 자유인으로서 공부하고 재충전하고 좀 마음껏 누리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다음에 좀 더 나이가 들은 뒤에 버킷리스트를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