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23·끝)코로나19가 낳은 호주의 역설적 성공모델 ‘선구매후 결제’
by김영수 기자
2020.12.26 06:11:56
[편집자주] 이데일리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공동으로 세계 주요 국가들에 주재하고 있는 무역관 주재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해당 국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소식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국내 기업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는 지금’ 연중기획은 이번 글을 끝으로 연재가 종료됩니다.
[변용섭 KOTRA 멜버른무역관장] 지난 6개월간 ‘락다운의 수도’라고 불리울 정도로 강력한 봉쇄 조치 끝에 호주는 지역 감염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호주가 성공적인 방역국가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남반구의 호주인들은 이제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 최대쇼핑 시즌인 크리스마스와 박싱데이(Boxing day)를 준비하고 있다.
호주는 봉쇄 기간 동안 디지털 전환에서 크게 진전을 봤다. 전체 기업 40%가 디지털화, 비대면 방식으로 시스템을 변화시켰다. 외출이 제한되면서 온라인 소비금액은 73%가 증가했다. 성장이 느리기만 하던 B2C 전자상거래 시장이 전체 소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까지 상승했다. 자연스럽게 온라인 결제 및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한 결제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쇼핑을 즐기는 호주인들에게 선구매 후결제(Buy Now Pay Later, BNPL)는 코로나19가 낳은 역설적 성공 모델이다. 이 결제 시스템은 단순히 경제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가 애용하는 ‘빈(貧)테크’에서 벗어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주목 받는 ‘혁신 핀테크(Fintech)’가 되고 있다. 호주 1위 기업 애프터페이(Afterpay)의 주가는 2017년 주식시장(ASX) 상장시 AUD 3달러 수준이었지만 올해 12월 AUD 111달러까지 상승하며 ASX20 엘리트 클럽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선구매 후결제(BNPL) 서비스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 소비시장의 총아가 되고 있다. BNPL은 결제 업체가 소비자 대신 쇼핑 금액의 100%를 가맹점에 선지불하고 소비자는 구매 후 2주 단위로 무이자로 갚아가는 비교적 단순한 결제 방식이다. 신용카드와 달리 신용 조회 절차 없이 온라인 등록 즉시 승인이 된다. 소비자들은 이자가 없는 대신 일정 기간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연체료를 내야 한다.
호주가 만든 BNPL은 무이자 결제가 자리잡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비즈니스이지만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며 글로벌 금융권의 파괴적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세계적 온라인 결제 기업 페이팔도 프랑스에 이어 미국과 영국에서 BNPL 서비스를 선보이며 신성장 동력화하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몰 아마존, 이베이에서도 BNPL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애프터페이, 짚, 흄, 오픈페이, 레이바이, 래티튜드페이 등 10여개 회사가 무한 경쟁하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와 고객 연체료가 주수입원인 이들은 안정된 수익 모델을 찾기 위해 온라인몰, 은행, 카드사 등과 합종연횡하며 새로운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연일 내놓고 있다.
BNPL 시장의 글로벌 리더가 된 애프터페이는 코로나의 영향에도 올해 매출액이 AUD 5억2000만 달러로 작년 대비 2배 성장했다. 오프라인 매장까지 진출해서 가맹점 수도 5만5400개로 늘어났다. 호주 도시의 어느 매장에 들려도 BNPL이 들어와 있다. 호주에서 성공한 애프터페이는 2018년 1월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시아 시장 진출도 계획 중이다. 또한 호주 밖에서 성장한 BNPL 기업들도 핀테크 선진국 호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호주는 어떻게 BNPL의 선도국이 되었을까. 호주는 발달된 핀테크 환경을 가지고 있다. 또 쉽고 편리한 비현금 결제 방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높다. 정부 또한 핀테크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과감한 지원 정책과 낮은 규제수준으로 디지털 결제시장을 조성하고 있다.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은행 및 금융기관에서도 핀테크 기업과 손잡고 급격히 변하는 디지털 결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NPL의 성장은 신용카드의 쇠락을 가져왔다. 호주 소비자들은 까다로운 신청절차와 이자 수입 모델을 고수하고 있는 신용카드를 미련없이 떠나고 있다. 올해만 약 40만 개의 신용카드가 취소돼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의 소비액을 기록하고 있다. 전통적인 금융지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21년 만에 공인인증서가 폐지됐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비대면 시대에 새로운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에 적용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코로나 이후 불확실성 시대가 비즈니스계에도 오고 있다. 소비자, 기업, 이해관계자들이 신뢰를 구축하고 탄력성을 높이는데 디지털 전환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