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공태영 기자
2019.03.23 00:15:40
'탈소유'가 몰고 오는 구독경제
월정액 내면 영화, 드라마, 책 등 무제한 이용
소모품뿐 아니라 차, 사무실에도 '구독'의 바람 불어
대학생 남규진(가명·27) 씨는 얼마 전에 모 쇼핑사이트에서 생수 정기배송이란 걸 알게 되어 신청했다. 자취를 하면서 예전엔 항상 근처 마트에서 물을 사왔었지만 이제는 매월 신청한 날짜에 자취방 문 앞으로 물이 배송된다. “어차피 물은 매달 마셔야 한다. 정기배송 신청만 해놓으면 번거롭게 물을 살 필요도 없고, 마트보다 싼 가격에 배송까지 해주니까 훨씬 편한 것 같다.”라고 그는 말했다.
'소유'에서 '구독'으로의 이행
이처럼 월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독경제’가 세계적으로 활발해지고 있다. 스위스 금융기관 크레디트 스위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구독경제 시장규모는 2015년 약 470조원에서 2020년 약600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금액을 지불하고 상품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던 ‘상품경제’에서 자신의 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공유경제’를 지나 더 이상 상품을 소유하지 않고 ‘구독’하는 구독경제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사실 구독경제가 전혀 낯선 개념은 아니다. 10년, 20년 전만 해도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고, 요구르트를 가져다주던 게 우리의 동네 풍경이었다. 현재 구독경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옷, 화장품, 책, 영화, 자동차 등 대상과 범위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는 추세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넷플릭스’이다. 넷플릭스는 월정액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로 한 달에 일정 요금을 내면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모든 영화, 드라마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밀리의 서재’는 넷플릭스처럼 월정액을 내면 제공되는 모든 전자책을 읽어볼 수 있다. 기존에 영화, 전자책 파일을 직접 다운 받아서 ‘소유’하던 과정이 생략되고 대신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것을 ‘구독’하는 게 가능해졌다.
앞선 사례의 물 정기배송처럼 주기적으로 상품을 배송해주는 구독 서비스도 인기가 많다. 면도기를 정기배송해주는 ‘와이즐리’, 화장품을 정기배송해주는 아모레퍼시픽의 ‘스테디’ 외에도 셔츠, 생리대, 주방용품, 꽃 등 다양한 물품들을 주기적으로 배송하는 서비스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구독 서비스는 단가가 낮은 상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차에서 올해 11월까지 제공하는 ‘현대 셀렉션’은 월 72만원을 내면 쏘나타, 투싼, 벨로스터를 2회까지 바꿔 탈 수 있는 서비스이다. BMW가 내놓은 ‘올 더 타임 미니’ 역시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원하는 BMW MINI 차량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타볼 수 있다. 매장을 구독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불레틴’은 매장을 쪼개서 선반, 벽 등을 필요한 만큼 빌려주며, 돈을 낸 업체가 물건만 보내면 알아서 판매까지 해준다. 차와 공간 등을 공유하는 서비스가 우리에게 막 익숙해질 무렵 그것들을 구독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구독의 3가지 무기 - 편리함, 통제감, 낮은 역치
이렇게 구독경제가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전승우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생수나 화장품 등의 정기배송은 편하다는 점, 넷플릭스 같은 월 '무제한' 서비스는 통제감(perceived control)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가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시피 한 사회에서 '무제한'이란 단어는 자신이 대상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또 "역치(threshold)가 낮다는 것도 구독 서비스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말한다. 모아놓으면 큰 돈을 월 단위로 나누면 마치 커피 한 잔 값처럼 작은 돈이 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기꺼이 구독에 돈을 지불한다고 할 수 있다.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어떤 이점이 있을까. 우선 구독하는 기간 동안 고객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므로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또한 구독을 통해 소비자 성향, 구매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에어비앤비나 우버 같은 공유 서비스는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공유경제에서 소유의 경계가 희미해졌다면 이제 구독경제에서는 소유의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소비자들은 더 이상 마음에 드는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다만 구독할 뿐이다.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