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전력시장 개방하면 국민 편익 높아진다?
by조진영 기자
2018.12.11 05:00:00
영국, 송전망 쥐고 발전·판매시장 개방
업체간 경쟁으로 전기요금 인하 효과
전문가 모두 "보조금 떼고 경쟁해야"
연료비 변동 이어 에너지안보는 변수
[런던·웨스터햄·샌드허스트(영국)=이데일리 조진영 기자] 전력시장 개방을 두고 정치권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015760) 중심의 독점체제를 깨고 경쟁체제를 구축해야 국민 전체의 편익을 높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기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의 주장이 눈에 띈다. 이 의원은 “전력산업을 개방하고 경쟁을 도입해 시장구조를 수요자 중심으로 개선해야 국민 편익을 증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말은 사실일까?
전력시장을 가장 빠르게 열어젖힌 영국의 경우를 보면 이 의원의 주장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현재 한국의 전력시장은 발전·송전·배전을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형태다. 반면 영국의 경우 11개 발전사와 6개의 주요 판매회사가 경쟁하고 있다. 기본요금을 높게 내는 대신 사용량 요금을 적게 내는 요금제가 있는가 하면 사용량에 따라서만 요금을 내는 요금제도 있다.
영국 샌드허스트에 살고 있는 한국인 이승은(33) 씨는 “전력회사별로 비교해 유리한 요금을 선택할 수 있다”며 “전력회사를 바꾸려고 연락하면 추가 할인혜택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 휴대전화를 바꿀 때 통신사를 옮겨 보조금을 받는 것과 비슷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해지절차도 필요없다. 새로운 업체에 전화만 걸면 다음달부터 다른 전력 회사의 고지서가 날아온다.
| 영국 샌드허스트에 사는 이승은(33) 씨가 이웃에 사는 한국인 친구들과 전기요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조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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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보니 거주지역과 한 달 전력 사용량, 주요 소비패턴 등을 입력하면 어느 회사의 어떤 요금제가 더 저렴한지 알려주는 사이트도 생겼다. 런던에서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문희성(27) 씨는 “전력 소비정보를 입력하고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면 매달 알아서 전력 공급업체를 바꿔주는 서비스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전력회사들도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요금을 확인할 수 있도록 스마트미터 보급을 늘려가고 있다. 웨스터햄 비긴힐에 사는 머린 제니퍼 크레이퍼(65)·로버트 브라이언 크레이퍼(67) 부부도 이 혜택을 받고 있다. 크레이퍼 씨는 “최근 조금 더 요금이 저렴한 전력 판매회사인 EDF로 옮겼는데 스마트미터를 설치해줬다”며 “시간대별로 전력 사용량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전기를 절약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력시장 개방이 소비자 효용을 증대시킨다는 이 의원의 주장이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 웨스터햄 비긴힐에 사는 머린 제니퍼 크레이퍼(65·왼쪽)·로버트 브라이언 크레이퍼(67) 부부가 영국의 전기요금 체계와 스마트미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업체 간 스마트미터 설치 경쟁이 붙었다”며 “스마트미터 설치 후 전기 절약에 더 신경을 쓰게됐다”고 말했다 [사진=이데일리 조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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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비자 편의가 극대화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전력시장이 개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내셔널그리드(National Grid)라는 송전망 운영회사가 공기업으로 남아있다. 모든 발전사와 판매회사는 이 송전망을 통해 가정용 전기와 산업용 전기를 공급한다. 발전소에서 먼 지역이라도 송전비용이 어느정도 고정돼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발전사 입장에서는 발전 원가를 낮추는 일이 가장 중요해졌다.
영국 정부가 전기요금 가격 인하 자체에만 집중했던 것은 아니다. 화석연료 대체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의무할당량만큼 재생에너지 인증서를 정부에 제출하지 못한 발전사가 바이아웃펀드에 돈을 지불하도록 하는 재생에너지 의무제도를 시행해왔다. 공공기관 성격을 띈 옵젬(Ofgem·the Office of Gas and Electricity Markets)은 기업이 이익을 얼마나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해 규제하기도 했다. 정부가 주도하긴 했지만 민간이 함께 참여해 만들어낸 결과다.
저탄소를 추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가 남았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부(BEIS)는 각 발전원별 보조금을 조금씩 줄여가면서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영국에서 원자력 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신재생에너지 확충을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 뉴클리어 워치 유럽(New Nuclear Watch Europe)의 의장을 맡으며 원전을 일정부분 존치시켜야한다고 주장하는 팀 요 전(前) 영국 하원 에너지위원장은 “10여년전부터 풍력과 태양열에 많은 보조금이 지급됐다”며 “보조금만으로 지속가능한 산업은 없다. 경쟁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성을 주장하는 월트 패터슨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도 “이미 보조금 없이도 풍력에너지가 원전보다 발전 단가가 싸다”고 말했다.
다만 경쟁구도 도입이 곧바로 전기요금 인하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전력시장 개방 당시 전력가격이 대폭 올랐다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안정을 찾았다. 특히 영국의 경우 한국과 달리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사용하고 있어 가격 변동이 심했다.
저탄소 발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전기요금은 올랐다. 2017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영국의 전기요금은 3위권이다. 2010년까지 10~11위권에 머물다가 석탄 폐쇄를 결정하며 전기요금이 대폭 상승한 것이다.
특히 영국의 6대 주요 전력 판매회사(npower, e·on, EDF, SSE, Scottish Power, British Gas Business) 중에서 SSE(스코틀랜드)와 British Gas Business(잉글랜드)만이 영국계 기업이다. 다른 기업들은 스페인, 독일,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에너지안보 우려도 커지고 있다.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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