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리룡남 만나 경협 판 키우고…IT 대표, 4차혁명 협력 길 닦는다

by안승찬 기자
2018.09.18 04:20:00

경제인 방북단 17명 역할은
저임금 北노동력+南자본·기술 매력
삼성·LG, 北서 가전·TV 생산 경험
北 ''투자 결정권'' 오너 방북 원해
제조업→ICT 분야 협력 확대 전망도

[이데일리 안승찬 김현아 기자] 1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공식수행원 14명 외에도 각계각층에서 선발된 52명의 특별수행원이 문재인 대통령과 동행한다. 특별수행원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건 기업인이다. 총 17명이 기업인이다. 남북 경제협력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라는 뜻이다.

미국의 대북 제재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기업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분위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4대그룹 총수들의 동행을 직접 요청했을 만큼 신경을 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재계 오너들이 총출동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 이 부회장의 방북단 포함이 부적절하다는 일각의 지적도 나왔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일은 일”이라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4대 그룹 중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만이 월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과의 면담 일정으로 예외를 인정 받았다.

북한이 재계 오너들의 방북을 적극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를 결절할 수 있는 그룹 오너의 동행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방북한 기업인들은 리옥남 경제담당 내각부총리를 면담할 예정이다.

세계 3대 투자자가 꼽히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북한을 “하얀 도화지”라고 표현한다. 그 위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의미다.

모건스탠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단위 시간당 임금은 1.1달러에 불과하다. 차세대 제조공장으로 꼽히는 베트남(1.3달러)보다 더 싸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 같은 한국 기업들이 기꺼이 북한으로 투자처를 옮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단순히 인건비가 싸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북한은 소비력과 상당수 글로벌 기업을 유치한 한국과 바로 붙어 있는 국가다. 남북한 인구를 합치면 8000만명에 달한다. 통일 한반도는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단일 시장이 될 수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북한 투자는 처음이 아니다. 20여년 전에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평양 인근에서 TV를 생산한 경험이 있다. 당시 삼성과 LG는 부품을 서해 해로로 운송해 평양까지 공급하고, 공장에서 조립해 다시 배를 통해 국내로 들여왔다. 생산 물량은 연간 약 5만대였다. 두 회사는 약 10년간 북한에서 TV 생산을 이어왔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천안함 사태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하자 중단했다. LG전자가 2009년 북한에서 먼저 철수했고, 삼성전자도 2010년 북한을 떠났다.

삼성전자는 한때 반미(反美)국가였던 베트남에 대규모 휴대폰 공장을 지은 바 있다. 북한에 대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히면 재계가 대북투자를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도 지난 2005년까지 북한에 30만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공장을 만드는 내용의 사업의향서를 들고 북쪽과 논의를 진행한 적이 있지만 무산된 바 있다. 북한의 노동시장이 개방되면 공장건설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기존 노조의 반발 등을 고려하면 쉬운 선택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인 현대로템 등을 통해 남북간의 철도 연결과 도로확장, 인프라 구축을 담당하는 쪽에 기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SK는 에너지와 통신과 관련된 남북경협 사업에 나설 수 있다. 러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통한 천연가스(PNG) 사업이 추진될 경우 SK의 역할을 중요하다. 통신망 등 IT 인프라를 까는 데에서 SK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포스코는 남북경협태스크포스(TF)팀을 꾸릴 정도로 대북사업에 적극적이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지난 7월 취임 때부터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포스코가 가장 실수요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북한의 인프라 구축 사업이나 북한 제철소 리노베이션 등 철강업에 대한 투자도 포스코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의지를 보였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단순히 북한에 생산공장을 유치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북한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북한의 경제를 4차산업혁명으로 단박에 도약하는 것이다. 방북단 명단에 공유자동차업체인 쏘카의 이재웅 대표와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등이 이름을 올린 이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012년 담화에서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 높이 나라를 지식경제강국으로 일어세워야 한다”는 교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만큼 4차산업혁명에 관심이 높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ICT는 강력한 제대 대상이어서 대북제재가 안 풀리면 어렵다”면서도 “이번 경제인 사절단에 IT분야가 포함된 것은 풀린다는 전제 아래 가능성을 확인하고 서로에게 확신을 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웨어의 경우 우리가 북한의 고급인력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웅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새로운 경제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면서 “오래 전부터 남북의 젊은 세대가 같은 꿈을 꾸고 함께 미래를 만드는 세상을 기다려왔다. 남북 평화는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IT 혁신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는 이것을 현실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다녀와서 평화 이후에 남북의 미래에 대해 소셜벤처 생태계, 혁신기업 생태계, IT 모빌리티 생태계에 있는 분들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4차산업혁명 위원회 관계자는 “재벌 총수들의 방북은 인프라나 SOC 등의 분야에서 이야기된다면 (장 위원장이나 이재웅 대표의 방북은) 벤처IT인들이 눈에 안 보이는 신경제 분야에서 협력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ICT 분야는 제재가 여전해 장관이 가시면 정부대정부간 협상으로 무거워지니까 민간으로 가는 게 부담을 덜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고 평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과거의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사양산업을 처리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실패할 것”이라며 남북경협이 기존 산업을 넘어 4차산업혁명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