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금융인프라가 만든 전세계 1위 中 핀테크

by김인경 기자
2018.08.22 05:00:00

지난해 中 모바일 결제시장 규모 15조달러에 달해
보급율 낮은 신용카드·위조지폐 많은 현금 대신 "믿고 쓴다"
금융당국, 현금결제 거부·P2P 규제 나서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베이징= 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중국 베이징 조양구 왕징 사거리. 과일과 채소를 고른 후 지갑을 꺼내자 노점상은 잔돈이 없다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위챗페이(웨이신) 결제시스템의 QR 코드를 보여준다. 금액과 비밀번호 6자리를 입력하니 자동으로 결제된다. 주인은 자신의 계좌에 입금됐다는 문자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중국은 이제 현금보다 모바일 결제가 더 많은 나라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스정류장 바로 옆 잡지를 파는 가판대에도 양대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위챗페이와 알리페이(즈푸바오)의 QR코드를 비치해 놓고 있다. 아직 현금 충전 시스템인 지하철 교통카드 충전기엔 ‘전자결제시스템으로 돈을 보내 줄 테니 현금을 빌려달라’고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까지 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은 은산분리 완화를 촉구하며 급속도로 발전한 중국 핀테크 기술에 대해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베이징을 국빈 방문해 현지 음식점에서 아침 식사를 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테이블에 붙은 QR코드를 이용해 결제를 하는 모습에 “이렇게 하면 결제가 된 것이냐”며 중국의 핀테크 기술에 놀라기도 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정보기술(IT)를 통해 전통적 금융 서비스를 혁신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전자결제 뿐만 아니라 개인간(P2P·Peer to Peer) 대출, 암호화폐 모두 핀테크의 한 축으로 전세계 IT업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최대 10%(의결권 있는 지분은 4%)로 제한하는 은산분리 탓에 인터넷 전문은행이 설립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해도 증자가 어려워 일부 인터넷 전문은행은 규모를 확대하긴커녕 신용대출 상품을 중단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소액을 투자해도 높은 이익을 챙길 수 있어 새로운 재테크 투자처로 각광 받는 P2P 역시 한국에선 투자 한도를 2000만원으로 두고 있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중국은 글로벌 핀테크 기술, 특히 전자결제 서비스를 주도하는 국가가 됐다. 시장조사기관 아이리서치그룹에 따르면 중국의 모바일 간편결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15조4000억달러(1경6761조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글로벌 신용카드업체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를 통해 전 세계에서 결제된 금액인 12조5000억달러보다 20% 이상 많은 금액이다. 게다가 금융과 IT를 모두 주도하는 미국의 모바일 간편 결제 시장 규모가 1120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발전 속도는 더욱 놀랍다.

중국에선 이제 현금보다 모바일 결제가 더 많을 정도다. 실제로 중국 내 지급방식에서 모바일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3%로 2014년 4%에 대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중국이 핀테크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던 것은 역설적으로 ‘낮은 금융 인프라’ 탓이었다.

중국의 신용카드 보급률은 2016년 기준 8%에 불과하다. 중국 대도시로 손꼽히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선전에서도 대형 쇼핑몰을 제외하면 카드리더기조차 없는 상점이나 음식점이 대다수이다.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등 글로벌 카드업체들은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 때문에 안착에 실패했고 2,3선 도시에선 신용카드 결제 자체가 정착화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기준 스마트폰 보급량이 15억대 수준으로 보편화하자 중국 국민은 바로 모바일 결제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중국은 아직도 위조지폐를 종종 볼 수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중국 대형상점 계산대에는 위조지폐 감별기가 설치돼 있는 경우도 있다. 위조지폐를 받느니 안전한 전자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는게 상점들로서도 유리하다.



게다가 중국 당국이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아닌, 정보기술(IT)업체에 결제시장의 문호를 연 것도 모바일 결제를 확산시킨 이유 중 하나다. 세계 최대 온라인쇼핑몰인 알리바바와 중국 최대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가 각자의 플랫폼과 결합해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내놓았다. 쇼핑몰에서 비밀번호 여섯 자리만 누르면 바로 결제가 되고, 메신저에서 다른 사용자에게 쉽게 이체할 수 있자 중국 소비자들은 빠르게 모바일 결제에 빠지게 됐다. 상황이 이렇자 음식 배달, 공유자전거 등 신규 애플리케이션(앱)들도 알리바바나 텐센트와 제휴해 QR코드 결제를 도입하며 빠르게 규모의 경제를 키웠다.

최근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40여 개국의 현지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해외 가맹점도 받고 있다. 서울 명동이나 코엑스 등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지역엔 이미 QR코드가 붙어 있는 상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중국인 입장에선 해외에 나갈 때도 환전이 필요없는 셈이다.

모바일결제를 바탕으로 핀테크 시장 세계 1위 자리에 등극했지만 중국 금융당국도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당초 중국 금융당국은 별다른 규제를 만들지 않고 핀테크를 육성했지만 전자결제시스템이 현금을 ‘거부’할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되자 칼을 뽑고 나섰다. 인민은행은 지난달 13일 “모바일 결제의 과도한 확산이 인민폐의 지위를 위협하고 지불수단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어떤 개인이나 단위든 현금 결제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인민은행은 이미 지난해 8월에도 전자결제시스템 회사들에 무현금 마케팅 금지령을 내린 바 있다. 전자결제는 ‘옵션’이지 ‘기본’이 되선 안된다는 것이다.

핀테크의 다른 한 축인 P2P대출 플랫폼은 더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온라인 소액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학생이나 자영업자, 개발업자 등 1금융권이 요구하는 신용도를 충족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P2P시스템은 중국 금융권의 또 다른 뇌관이다.

특히 문제의 도화선이 된 것은 2015년 말 ‘이주바오’ 사건이었다. 피라미드 사기 방식으로 100만 여명의 투자자에 500억위안의 피해를 입힌 이 사태 이후 중국은 핀테크 시장에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이후 2016년부터 인민은행은 인터넷금융 정리 전담팀을 구성한 이후 5000여 개의 P2P플랫폼을 퇴출하고 P2P업체 신규신설을 금지했다. 특히 올해는 인터넷 금융에 대한 관리감독을 정부 업무보고에 담으며 육성보다는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IT 기술을 바탕으로 탈규제와 아이디어 속에 성장해온 핀테크가 규제란 찬물에 성장세가 멈출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핀테크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대형 은행에겐 희소식이겠지만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작은 민영 금융사 입장에선 청천벽력”이라며 “핀테크의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