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윤종성 기자
2018.01.19 05:10:00
일단 터지면 일단 규제로 눌러
법령· 지방조례만 수십개 생겨
규제 혁파 없이는 성장도 없다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무슨 일이 터지면 지레 겁부터 먹고, 일단 막고 보자는 것이 습성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이데일리가 신년기획으로 연재 중인 ‘초(超)혁신시대, 산업의 미래는’ 시리즈 기사의 취재 과정에서 만난 규제분야 전문가의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규제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해선 안된다. 규제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언제부턴가 정부는 ‘규제’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요술 방망이’나 ‘만능키’로 여기는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규제로 누르고 제한하려는 생각부터 한다. 그러다 보니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규제가 생겨난다. 새로 생긴 하나의 규제는 법령, 지방조례 등으로 확장되면서 순식간에 수십개로 불어난다.
과거 정권에서 ‘전봇대’, ‘암덩어리’, ‘원수’, ‘손톱밑 가시’ 등의 격한 표현을 써가며 백날 규제 혁파를 부르짖어도, 규제가 줄어들기는커녕 되레 늘어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요며칠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관련해 문재인정부가 보여준 모습이 딱 그렇다.
가상화폐의 가파른 성장에 투자자들이 몰리자, 정부는 향후 있을 지 모르는 부작용을 우려하며 겁을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선 비정상적·불안정이라며 시장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더니, 지금은 거래소 폐지와 실명제 도입 등 각종 규제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 움직임에 가상화폐 가격은 폭락하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본 규제 전문가들은 혀를 찼다. 한 대학 교수는 “가상화폐 열풍에 대해 정부가 정확하게 진단한 것이 맞느냐. ‘과열’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냐”라고 되물었다. 경제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대한민국은 ‘규제 왕국’이 맞다는 걸 재확인시켜 줬다”라고 말했다.
특히 가상화폐가 산업 지도를 바꿀 만한 혁신기술로 평가받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더욱 씁쓸해 한다. 가상화폐를 강력하게 규제하면서도, 블록체인 기술은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방향에 대해서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사회적 비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졸속으로 도입되는 규제는 시장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혁신성장의 미약한 불씨마저 꺼뜨린다. 한 대학 교수는 “가상화폐 열풍을 보면서 뉴욕의 월스트리트처럼 서울을 가상화폐 중심가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우리나라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성장하기 정말 어려운 나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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