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수영 기자
2016.05.17 05:00:00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회복세를 보이던 부동산시장이 때 아닌 대형 악재를 만났다. 이번엔 융단 폭격 수준이다. 세종시 아파트를 특별공급으로 분양받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불법전매 수사가 일반인 ‘다운계약서’(실제 거래액보다 낮게 계약서에 매매 가격을 쓰는 것) 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수사 방향을 지방 10개 혁신도시로까지 확대할 움직임까지 일고 있어 지방 부동산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사가 길어질 경우 수도권까지 그 여파는 미칠 수밖에 없다. 여신 심사가 강화된 지 두 달 여 만에 내성이 생긴 부동산시장은 다시 터진 악재로 울상이다.
현재 시장에서 다운계약서 작성은 공공연한 비밀이 돼 있다. 정부가 2013년부터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을 대폭 완화하면서 단기 투자자는 크게 늘었지만 웃돈이 많이 붙어 거래했다는 신고는 거의 없다. 양도소득세 중과제도가 여전히 잔존하면서 다운계약서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기가 높은 분양아파트는 분양 1년 만에 전체 물량의 70% 이상 손바뀜이 일어날 정도다.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신반포 자이’ 아파트는 일반분양분 153건 가운데 현재까지 89건이 명의 변경됐다. 같은 시기 대림산업이 분양한 대구 중구 대신동 e편한세상 아파트는 일반분양분 305가구 중 245건이 전매돼 초기 전매율이 무려 80.3%에 달했다. 울산·대구·부산 등지에선 입주 전까지 약 4~5차례의 손바뀜이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단기간에 거래가 이뤄진 것은 그만큼 투자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돌려 생각하면 투기 가능성도 클 수밖에 없다. 아파트 분양권을 1년 안에 되팔면 시세 차익의 50%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2년 내에 팔면 40%가 세금으로 붙는다. 1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면 5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데, 쉽게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 분양권 불법 전매, 다운계약서 작성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다운계약서 작성은 공직자 청문회 때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장관 내정자뿐 아니라 대선 주자로 거론됐거나 거론돼온 정치인들조차 주택 매매거래시 다운계약서를 썼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관행처럼 넘어갔다. 이런 현실이 공직사회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증명된 것이다.
그동안에도 정부는 분양권 불법 거래 행위에 대한 단속을 해왔다. 하지만 대부분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세종시 불법 거래가 횡행한다는 지적도 2012년부터 계속 나왔던 문제다. 더구나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개업소들은 이미 관련 자료를 모두 패기 처분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세종시뿐 아니라 다른 지역 중개업소도 마찬가지다. 전매 제한 기간 내 불법 거래 행위도 사실상 명의는 그대로 두고 뒤에서 개인간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어서 적발이 쉽지 않다. 이를 불법이라 규정할 명확한 근거도 없다. 결국 정부의 강도 높은 수사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날 수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경우 ‘시장 죽이기’라는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
부동산업계는 정부가 대형 이벤트처럼 의례적 수사를 할 게 아니라 불법 행위를 막을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차피 분양권 거래를 통한 단기투자를 인정할 바에야 양도세를 낮추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무원들도 국민인데 세종시 아파트 특별분양 전매를 3년씩이나 제한하는 것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안에 따라 채찍보다 당근을 제시하는 게 훨씬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