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계 7대 제약강국, 한 여름밤의 꿈인가
by천승현 기자
2015.08.19 03:05:00
제약산업은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 미래 성장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약개발에 성공하게 되면 20년간의 독점특허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창출 가능한 부가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신종플루치료제로 잘 알려진 타미플루의 경우 1조원의 R&D 투자로 달성한 매출액이 이미 투자액의 3배에 달하는 3조2천억원을 넘어섰다.매출 규모가 연 5천억원에서 1조원 이상에 이르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은 대규모 국부 창출로도 직결된다. 고지혈증치료제인 리피토는 2010년 단일 신약으로서 127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94만대의 막대한 자동차 수출 효과와 맞먹는 수준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타미플루, 리피토, 천식치료제인 세레타이드, 류마티스관절염치료제인 휴미라 등 세계적인 신약들중 우리나라의 글로벌 신약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제약강국 도약을 위한 국내 제약산업의 달성 목표와 신약개발을 위한 정책방안을 제시했지만 국내 제약산업은 여전히 어려운 성장 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공확률, 비용, 투자회수기간의 측면에서 무엇 하나 유리할 것이 없는 신약개발이지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신약개발에 나서도 개발원가에 상응하는 가격 보상체계가 확립돼 있지 못한 상황이다. 약가결정 단계에서 중복 인하가 초래되고 있고 혁신성에 관한 명확한 판별 기준도 모호해 신약의 제대로 된 가치 반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약가 책정 이후에도 건강보험재정의 안정화 등을 도모하고자 시장수요가 많을수록 약가가 인하되기도 한다. 수출을 통해 신약개발의 수익성을 제고하고자 하여도, 국내의 다양한 약가인하 기전들로 인해 낮아진 약가가 수입국의 참조가격이 되면서 해외진출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합리적인 시장가격이 결정되고 이를 통해 신약개발의 성과가 보상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의약품 가격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현행 약가결정구조에서는 신약의 연구개발 비용 및 위험 부담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 방식으로 약가가 결정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GDP에서 차지하는 국내 제약산업의 생산액 비중이 2013년 기준 1.25%로 10년 전인 2003년 1.24%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는 모습이다. 2003년에서 2013년 사이 국내 제약사들의 매출액 및 영업이익 증가율이 점진적인 하락 추세를 그리고 있으며, 같은 기간 국내 다국적 제약사들의 매출액 증가율도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영업이익 증가율도 큰 폭의 등락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2년 약가재평가 실시부터 2012년 일괄약가인하제도 실시에 이르기까지 다량의 의약품 관련 규제들의 신규 도입 및 개정 등 제도적 변화에 상응하는 결과로 여겨진다.
진정성 있는 제약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R&D 투자와 직결된 약가산정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2011년 기준 국내 10대 제약사들의 R&D 투자 합계는 미국 화이자 1개사의 5.3%에 불과한 수준으로, 이런 상태로는 정부가 제시한 제약강국 비전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버릴 공산이 크다.
먼저, 심평원과 건보공단으로 이원화된 약가결정기구 체계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많은 약가 관련 규제의 혼선·난립과 약가 중복·과다 인하의 부작용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약가 예측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제약사들의 R&D 투자 위축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대체약제의 가격이나 제외국의 참고가격을 기준 삼아 신약의 급여적정성을 평가하는 데 그치기보다는 신약의 개발원가를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약가 결정 후 신약의 적응증을 확대해 나가거나 해외시장 수출을 위해 다국가 임상시험을 수행함으로써 추가적인 투자비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개발원가를 갱신할 절차 역시 부재한 상황이다. 임상적 우월성 및 혁신성 등 우수한 의약품의 가치 수준이 신약 가격에 합리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적절한 약가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대체약제의 가격이 오히려 신약 가격보다 높게 유지되는 기형적 상황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50대 제약사 0개, 글로벌 신약개발 성공 0건, 블록버스터급 신약 보유개수 0개라는 초라한 성적에서 탈피하는 것이 소원한 과제로 남아있다. 세계 의약품 시장을 선도하고, 다국적 제약사들과의 경쟁이 가능한 혁신적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국내 제약사의 출현이 과제를 풀어가는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내 임상시험 규모가 세계 10위권으로 신약개발의 능력이 충분하다. 이제라도 제약산업이 R&D 역량을 확충하는 데 적합한 약가산정제도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