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플레이DB 기자
2014.04.05 07:57:14
남.자.들.만 나오는 작품이 많아졌다. 요즘 대학로 무대는 어디를 봐도 남자 배우들뿐이다. 그렇다면 여배우들은 대체 어디간 걸까? 꽁꽁 숨어 있던 여배우들을 찾아 나섰다. 무대를 위해 묵묵히 내공을 쌓으며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여배우들를 앞으로 3주동안 매주 한 번씩 소개한다. 첫 번째는 배우 다. 공상아는 잘 논다. 연극 <바람난 삼대>에서 놀고, 상대 배우와 주거니 받거니 놀고, 관객들과도 신나게 논다. 지금까지 이렇게 무대에서 잘 노는 여배우가 있었던가? 플레이디비는 그녀가 궁금해졌다.
연극 <바람난 삼대> 송재룡, 공상아 페어 공연 마지막 날. 극중 정여사의 가발이 유난히 제자리에 안 맞아 공상아의 검은 머리가 자꾸 보인다. 뿌염뿌염이라고 소심하게 외치는 배우 공상아의 애드리브가 빛이 난다. 전력을 다해 관객들을 웃기고 망가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십 년 차 여배우. 지금 공상아를 만난다.
원래 2012년에 동명 연극으로 나왔던 작품이다. 연극 끝나고 두 달 정도 있다가 촬영을 했다. 지금 보니 그때 내 모습을 도저히 못 봐주겠다. 그때 치아교정을 막 시작했던 터라, 입이 부자연스럽고 너무 못 생기게 나왔다. (웃음) 사실 영화를 찍긴 찍었지만 이렇게 개봉까지 할 줄은 몰랐다. 영화제 출품 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민복기 연출님이 “여배우들을 위한 작품을 한번 써 보자”해서 연극이 먼저 나왔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영화 크래딧에서 보면 생략남이라고 나오는 이중욱 배우가 있는데, 기억남 송재룡 배우의 전화 상대가 바로 이중욱 배우다. 사실은 과거 연인이 남자였던 거지...(웃음) 둘의 회상씬도 찍었는데 딥키스 장면이라 아무래도 영화 흐름상 생략된 것 같다.
홍삼과 각종 약물로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 (웃음) 대사도 많고, 극 중간에 다른 역으로 변신도 해야 해서 힘들다. 초연도 하고 작년에도 했다. 작년에는 심지어 여자배우는 나 혼자였다. 평일은 물론 주말 2회 공연까지 여자 배우는 나 혼자였던 것이다. 남자배우는 더블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어떻게 했나 싶다. 지금은 하루 걸러, 일주일에 2-3번 하는데도 힘들다.
새로운 배우를 만나고 호흡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상대 배우들이 아무리 똑같은 대본을 가지고 그 역할을 표현하더라도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느낌이 다 다르다. 사람이 다르니깐 각 페어마다 재미있다. 재룡 오빠랑 나는 알고 지낸 지 워낙 오래됐고, 초연부터 같이 작업한 터라 서로 많이 능글맞다. 이번에 새로 합류한 박훈, 정순원 배우도 느낌이 다 다르다. 사적으로도 전혀 친분이 없고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난 배우들이라 새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재미있고 생경하고, 신선한 느낌이다.
차이무라는 극단에서 만났는데 그전에 <바람난 삼대> 말고 다른 작업들을 같이 많이 했다. 오랜 기간 함께 하다 보니 몸에 익은 농담들이 많다. 재룡 오빠는 내 눈빛만 봐도 아 하면 어 하고 바로 나온다. (웃음) 연습하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 캐릭터가 구축이 됐다.
무대 뒤에서 의상을 갈아입을 때 옷이 안 입혀져서 걸치고만 나간 적도 많았고, 가발이 벗겨진 적은 수 도 없이 많았다. 뒤로 들어가자마자 옷을 갈아입으면서 다른 역할의 목소리가 나와야 되는데.. 영감님 해야 하는 부분에 부장님을 하기도 하고. (웃음) 실수에서 애드리브로 대사 한 적도 많고. 너무 힘드니깐 정신을 놔버린 적도 많았다. 배우들을 도와주는 무대 뒤 헬퍼들이 배우들 정신 차리라고 때리고 소품 쥐어 주면서 내 보낸 적도 많았다. (웃음)
초등학교 5학년 때 TV에 스타가 모교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남희석씨가 나와서 안양예고에 찾아갔다. 남희석씨가 안양예고 안에 있는 소극장에 앉아서 여기가 내 모교고 여기서 연극을 했었다고 소개를 하는데 그땐 저기가 뭐 하는 곳인지 정확히 모르면서 빨간 카펫이 깔려 있는 소극장에 한 눈에 반해버렸다. 그때부터 아마 배우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안양예고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배우의 꿈이 생기고 그 꿈을 구체화시켰다. 학교에서 선배들이 신입생을 위해 워크샵 공연을 올렸는데 눈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걸 처음 봤다. 아주 이상하고 신기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양예고 시절에 놀기도 엄청 열심히 놀았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한편으로 은근히 보수적인 성격이라 선생님이 시키는 것도 굉장히 열심히 하는 모범 학생이었다. 그래도 또래 친구들은 입시전쟁 때문에 공부에 매여 있어야 했는데, 그때 나는 여름에는 물싸움,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면서 정말 잘 놀았다. (웃음) 그런 경험들이 나에게 자유로운 생각을 가질 수도 있도록 도움을 준 것 같다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를 나온 것이 배우로서 큰 힘이 되었다. 배우고자 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환경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대학 4학년 초에 <날 보러와요> 미스 김 역으로 데뷔했는데 입봉이 빨라서 학교 선배들도 대학로에 많이 없을 시기였다. 그래서 자연히 책임감이 더 커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예종 연극원 배우들에 대한 확인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감시의 눈초리가 많았다. 그래서 더욱 잘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누가 되면 안되겠다 싶어서 열심히 청소도 하고, 뭐든지 열심히 했다. 권해효, 최용민 등 대 선배님들이랑 작업이라 부담감이 엄청 났는데도 다들 많이 예뻐해 주셨다.
극단 차이무로 오면서 무대 위에서 놀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노력을 했는데 그게 진짜 어떤 의미였는지 잘 몰랐다. 그 의미가 몸으로 많이 와 닿았던 것이 바로 <씨, 베토벤>이었다. 무대 위의 배우로서 관객 하나 하나가 다 보이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통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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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한 편을 한다고 하면, 여기에 2~3달을 여기 메여 있어야 하고 그렇게 꾸준히 작품을 하면 1년에 4편 정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인생이 쉽지만은 않다. 이걸로 먹고 살긴 힘들다. 중간에 영화도 가끔 찍고. 드라마도 하고. 다른 부수적인 작업들을 한다. 든든한 부모님도 계시고. (웃음) 부모님과 동생들이 많이 희생해줬다.
무대 위에서 직접 관객들을 만나는 것. 피드백이 직접 온다. 직접적으로 반응이 오기 때문에 희열을 느낀다. 사실 그것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그럴 땐 소주 한 잔을 한다.(웃음) 관객이 없거나 적을 때도 힘들면 소주 한 잔 하면서 푼다.(웃음) 연극도 좋고 영화도 좋다. 연극만이 최고라고 규정짓고 싶진 않다. 영화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작업이다. 내 연기가 감독의 눈으로 새롭게 편집되는 걸 보면 색다른 재미가 있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예를 들면 하고 싶은 역할이 있는데 그 역활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런 것들이 매 스트레스로 온다. 그래서 재작년에 혼자 처음으로 여행을 해봤다. 제주도로 무계획 일정으로 떠났다. 무언가를 원해서 간 것도 아니고, 얻고 싶었던 것도 없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순간 순간 얻는 행복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를 조금 비웠다고 해야 하나. 늘 질투도 나고 욕심도 생기지만 조금씩 비워가고 있다.
요즘 나에게 던지는 화두가 ‘혼자 살고 있지 않다’이다. 배우로써 무대에 서는 내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장에 나가서 촛불도 들고 책도 읽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랑 같이 살고 있는 게 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느끼는 질투, 스트레스를 다른 행복감에서 찾는다.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행복감. 거창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대를 하면서 느끼는 어떤 행복. 그런 걸로 메꾸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내가 다른 삶이 있지. 예를 들어 오늘처럼 햇살 비치는 카페에서 맥주 마시면서 책을 볼 수 있는 삶이 있다. 부족한 부분이 있고 스트레스를 받고 작아지는 부분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죽을 때까지 그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왜 없었겠나. 매 순간이 슬펌프다. 특히 스물 아홉 살 때 직업을 바꾸고 싶었다. 어느 순간 회의가 들더라. 비록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고등학교부터 이 길로 왔는데 ‘그동안 내가 뭘 하면서 살았지’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연극 빼고는 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고. 진심으로 그땐 학교를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걸 하고 싶어서. 지금은 많이 여유로와졌다. 좀 천천히 가면 어때, 이게 아니면 어때.
어렸을 때부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중에서 레이디 멕베스라는 역활을 해보고 싶었다. 어떤 연출가냐를 떠나서 그 작품에서 레이디 맥베스란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존재감이 있는데, 여성으로써 그걸 표현해 보고 싶다.
상업 연극을 하고 있는데 예술만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관객이 보러와야 한다. 관객 분들은 대부분 여자들이 많고 그럴려면 아무래도 멋있는 남자분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여배우로써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도 글을 쓰는 극작가들이 남자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들을 쓴다. 여자들이 나오는 건 노출을 한다거나 섹스어필 하는 작품들이 많다. 그런 것 말고 여배우들이 많이 나오지는 않아도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 줄 수 있는 글을 써주시는 작가 분이 많으면 좋겠다.
수잔 서랜드. 그 배우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다. 물론 연기도 잘하고.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신념을 가지고 신념을 굽히지 않는 배우. 일단 그런 사람이 되는 게 꿈이다. 이 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이고 싶다. 예술을 한다고 예술가로써 특권을 가지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누가 그랬는데, 예술가라면 민중에 한발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거 빼면 시체다. (웃음)
오랜만에 이상우 선생님이 연출하는 작품을 하게 됐다. 우주비행사가 등장하고, 지구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나온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윤회 사상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영국에 사는 어떤 인물이 스코트랜드의 어떤 인물일 수도 있고 서로 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맡은 역할은 히드로 공항의 카페 주인과 임신 8개월의 경찰 역을 맡았다. 어디선가 봤던 사람이 또 이 사람 인가 질문을 하게끔 이 삶이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아주 작은 역할이지만, 많이 보러 와주면 좋겠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