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함의 힘' 믿다 팽당한 김상무,'발가벗은 힘'으로 전문가 된 이코치
by류성 기자
2019.08.17 04:11:15
[발가벗은 힘: 이재형의 직장인을 위한 Plan B 전략]
(13)‘명함의 힘’ 믿었다 팽당한 김 상무, ‘발가벗은 힘’ 믿었다 전문가 된 이 코치
대기업에 다니다 퇴직한 임원을 코칭한 적이 있다. 상무로 퇴직한 그는 갑작스런 퇴직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코칭을 시작할 때는 보통 “어떻게 불러드리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데,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더니 그는 ‘김○○ 상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갑작스런 질문에 마땅히 자신을 소개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 분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구나. ’발가벗은 힘‘이 아닌, 아직 ’명함의 힘‘에 기대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발가벗은 힘(naked strength)’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최근 출간한 내 다섯 번째 책 제목도 <발가벗은 힘>으로 지었다. 약간은 야릇한 느낌이 드는 이 말은 앨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이 쓴 〈참나무(The Oak)〉라는 시에 나오는 말로,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도 이 시를 인용해 명강의를 펼친 바 있다.
“나뭇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는 자신의 몸을 가릴 것이 없다. 한때 무성했던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었던 새, 나무 그늘 밑에서 쉬던 사람들조차 모두 떠나고 없다. 오로지 자신의 발가벗은 몸, 둥치와 가지만으로 겨울을 나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지위나 배경의 도움 없이 인간 아무개가 갖고 있는 본래적인 힘과 의지 ‘발가벗은 힘’으로 우뚝 서야 하고, 그것만이 진정한 내 것이다.”
그렇다면 ‘발가벗은 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명함의 힘’일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명함에 있는 회사와 직책, 이를테면 ‘○○회사 상무’, ‘서울시 ○○국장’, ‘○○대학 교수’ 등이 온전한 자신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속해 있던 조직을 떠나 계급장을 떼는 순간 자신을 지켜주고 대변해주던 직책은 사라지고 ‘발가벗은 나’만 남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회사 밖에서도 통하는 진정한 실력, 내 이름 석 자만으로도 통하는 진짜 역량, 즉 ‘발가벗은 힘’에 의존해 생존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허울을 벗어 던지고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명함의 힘’이 아니라 ‘발가벗은 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발가벗은 힘’을 소유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먼저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내 진짜 실력이 아닌 지위나 타이틀, 일시적인 상황이 주는 힘을 실력이라고 믿는 착각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윤석철 교수는 원어로 쓴 테니슨의 시 〈참나무〉의 한구절 “Autumn-changed. Soberer-hued. Gold again”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sober’입니다. ‘sober’는 사전적으로 ‘술에 취했다가 깨어난’, ‘헛된 환상 혹은 유혹에 취해 있다가 깨어난’ 바른 정신 상태를 의미합니다.”
결국 먼저 ‘유혹으로부터 깨어나야’ 발가벗는 힘(과정)을 갖출 수 있고, 최종적으로 발가벗은 힘(결과)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때가 되면 ‘술에 취했다가 깨어나야(sober)’ 한다. 퇴사 후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더 이상 임원 대접을 받기는 어렵다. 언제든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해야 하며, 퇴직 후엔 직업이 여러 차례 바뀔 수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상무까지 올라가면서 쌓은 전문성을 퇴직 후에도 자신의 브랜드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코칭한 많은 임원들 역시 회사에 충성을 다해 일하다가 예고도 없이 퇴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퇴직 후의 삶에 대해 준비해 놓은 것이 없었다.
나도 퇴사하면서 이후 어떻게 불리면 좋을지 생각해봤다. 그런데 나는 오래 전부터 ‘발가벗은 힘’에 대해 생각해왔던 터라, 퇴사 후 ‘상무’라는 타이틀 대신 ‘코치’로 불리길 원했다. 다행히 나는 퇴사 후 야생으로 연착륙해 ‘전문 코치’로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에서도 통하는 전문성을 쌓았기 때문이며, ‘이재형 코치’를 나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직의 울타리 안에서 살던 직장인들은 직장을 떠나는 순간 멘탈이 붕괴된다.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많지만 그중 정작 연락할 곳은 없다. 세상은 춥고, 할 일은 없고, 불러주는 데도 없다. ‘직업’을 만들어 놓지 않고 ‘직장’만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다. 이게 당신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을 믿는다. 직장에서 쌓은 전문 분야의 역량과 제2의 인생 직업의 연결고리를 찾아 그 분야에서 역량을 지속적으로 쌓는다면 전문가로서뿐만 아니라 자기 삶의 CEO로서 자기답고 멋진, 행복하고 의미 있는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2의 인생 직업으로 연착륙할 수 있는 나만의 핵심역량 또는 발가벗은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직장인으로서는 적합할지 모르나 평생 직업인으로서는 부족할 수 있다.
‘발가벗은 힘’은 경쟁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일지라도 ‘발가벗은 힘’을 갖추지 않으면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다. 가령 나이가 들면 전원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개중에는 ‘자연인’으로 살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TV 프로그램 ‘자연인’의 영향인 듯하다. 그런데 그저 경쟁 없는 사회, 전원이라는 조건만 갖춰지면 자연인으로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TV 프로그램에서는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건강상의 이유에서든, 또는 개인의 성격이나 사회 적응도 때문이든, 아니면 정말로 자연에서의 삶 자체가 좋아서 도시를 떠난 이들의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그들 중 자연에 정착하기가 쉬웠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 중 적응하는 데 3년, 5년 정도 걸렸다고 하는 사람은 양반이고,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경쟁 사회를 떠나더라도 생존을 위한 치열함은 도시 못지 않으며, 그들이야말로 ‘명함의 힘’을 벗어 던지고 오롯이 ‘발가벗은 힘’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농사나 짓지’,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라는 바람도 준비된 사람, 죽을 각오를 하고 매진하는 사람에게나 통하는 말인 것이다. 나중에 고향이나 시골로 내려갈 계획이더라도, 그럼에도 아직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발가벗은 힘’을 필히 길러야 한다. 요지는 ‘발가벗은 힘’은 단기간에 구축할 수 없기에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발가벗은 힘’을 키우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칠 불행은 과거에 우리가 소홀히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는 나폴레옹의 명언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