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장수기업 DNA]서경배 회장 "3대가 완성한 아시안 뷰티"
by최은영 기자
2015.01.02 06:00:01
"과거는 소중하게, 미래는 겸손하게"
아모레퍼시픽 70주년 첫 언론 인터뷰
3대가 이어온 미(美)의 여정 "가슴 벅차"
70년째 1위 원동력은 ''신뢰와 혁신의 DNA''
2015년은 ''원대한 기업''으로 가는 도약대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아모레퍼시픽의 가족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최초와 최고의 역사를 만들어낸 그 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또 70년 역사는 무엇보다 고객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어제를 돌아보고 우직하게 내일을 준비해 그 사랑에 보답할 것을 다짐합니다.”
을미년 새해 창립 70주년을 맞는 서경배(52)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소회다. 서 회장은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장밋빛 비전을 앞세워 거창하게 미래 계획을 설명하기 보다 소박하고 살뜰하게 식구들을 챙기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했다.
아모레퍼시픽(090430)은 1945년 창립 이래 줄곧 국내 화장품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그가 경영일선에 전면으로 나선 2000년대 들어서는 성장의 속도가 빨랐다. 2010년 2조원대에 머물던 매출은 2011년 3조원을 돌파했고, 2014년에는 연 매출 4조원대 회사로 거듭났다. 또 일찍이 중국과 미국, 프랑스 등 해외 11개국에 진출해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시작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2년 서 회장의 할머니 고(故) 윤독정 여사가 개성 자택 부억에서 동백기름을 추출해 내다 판 것이 효시다. 이를 옆에서 돕던 고 서성환 선대회장은 가업을 이어 받아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할머니에서 아버지, 그리고 그 아들로 이어진 70년간의 미(美)의 여정. 서 회장은 “돌아보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그 옛날 어머니의 부엌 한 켠에서 시작됐어요. 선친께서는 태평양 너머의 더 넓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안고 회사를 세우셨고요. 창업으로부터 70년, 개성 시절로부터 8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름다운 건강, 건강한 아름다움을 실현하기 위한 꿈과 신념, 그리고 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창업주인 선대회장은 2003년 작고하기 전까지 “우리 회사의 모태는 내 어머니”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서 회장이 존경하는 인물 역시 아버지다. 선대회장의 여권은 그의 애장품 1호다. 이 여권에는 1960년대 프랑스로 가기 위해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6개국을 거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선대회장을 떠올리며 가르침을 되새긴다.
“힘든 순간이 닥칠 때마다 늘 선대회장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자문해보곤 합니다. 선대회장께서는 신용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셨어요.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고객과의 약속, 장기적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거래처와의 약속, 일하기 좋은 일터를 제공하겠다는 종사원들과의 약속을 최대한 지키고자 노력하셨죠. 또 항상 남들과 달라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신뢰와 혁신의 DNA가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70돌을 맞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서 회장은 사장으로 취임한 1994년 직후 회사의 몸집을 줄이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을 때가 경영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업계 사람들은 당시 구조조정이 없었다면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다가올 위기를 예감하고 본업인 화장품 사업을 제외한 증권, 보험, 패션사업 등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이 밖에도 경기 불황, 시장의 변화 등으로 인한 난관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회사에 늘 새로운 성장과 도약의 발판이 됐다고 서 회장은 말한다.
서 회장은 앞서 그룹의 중장기 비전과 전략을 ‘2020년 원대한 기업(Great Global Brand Company)’으로 요약해 밝힌 바 있다. 2020년까지 5대 글로벌 브랜드(라네즈·마몽드·설화수·이니스프리·에뛰드)를 적극 육성해 전체 매출 12조원, 해외 사업 비중 5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원대한 기업’은 ‘좋은 회사(Good Company)’를 뛰어넘어 전 세계에 아름다움이라는 감동을 전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서 회장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물었다. 그는 ‘다름’을 강조했다.
“세상의 미는 각기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우리 만이 가진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인 ‘아시안 뷰티(Asian Beauty)’의 가치를 더욱 높여갈 겁니다. ‘아시안 뷰티 크레에이터’로서의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서 회장은 “좋은 기업에서 원대한 기업으로 나아가는 도약대에 서 있다”고 아모레퍼시픽의 오늘을 말한 뒤 “향후 몇 년 간은 비전 달성을 위해 본 궤도에 오르는 시기가 될 것이다. 쉼 없이, 그리고 즐겁게 일하게 될 것 같다”며 기대했다.
70주년 행사로 특별히 계획한 일은 없는 듯 보였다. “오만하거나 과신하지 말고 겸손하게, 혁신을 빠르게 추진해 나가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빛나는 과거는 소중하게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 “우리나라 장업계 역사를 이끌어온 기업으로서 70주년 대한민국, 그리고 아모레퍼시픽의 뷰티 역사를 몇 가지 방법으로 콘텐츠화해 내부 임직원, 고객 등과 소통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성환 창업주의 차남으로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87년 태평양에 입사해 그룹 기획조정실 사장을 맡아 태평양증권·태평양패션·프로야구단 돌핀스·여자농구단 등 계열사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1992년 태평양제약 사장, 1997년 태평양 대표이사, 2006년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13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2014년에는 처음으로 블룸버그가 조사해 발표한 ‘세계 200대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서 회장의 재산은 66억달러(약 7조1000억원)로, 200위 안에 든 한국인은 서 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