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효과 없는 '금융사기' 대책

by김동욱 기자
2014.11.12 06:00:00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한국씨티은행은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피해액의 절반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강제 조정 결정에 이의서를 냈다. 사기꾼 말에 속아 본인 금융정보를 넘긴 개인의 과실이 더 큰 만큼 법원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이 1차 재판 때 피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법조계는 항소심에선 1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유사 소송을 다룬 재판에서 본인 정보를 노출한 개인에게 중대과실이 있다며 은행엔 책임을 묻지 않는 쪽으로 판결을 내렸다.

보이스피싱·파밍사기 등 금융사고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선 피해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은행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금융사기 피해자가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긴 적도 단 한 번도 없다. 이유는 모두 같다. 애초 본인 정보를 흘리지 않았다면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논리다. 정작 거래시스템을 관리하는 은행은 상대적으로 책임에서 자유로웠다.



문제는 최근 금융사기 현황을 보면 사고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과실로만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은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그동안 당국이 여러 대책을 내놨는데도 금융사기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피싱사기는 30대 여성에게, 대출사기는 40대 남성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연령층 가운데 은행 거래에 가장 밝은 30·40대의 피해가 가장 컸던 것이다.

그만큼 사기 수법이 교묘해진 데 따른 것이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마지막 관문인 은행 문이 허술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은행 거래에 밝은 이들도 이렇게 사기를 당할 정도인데 정작 은행들은 거래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 이상거래시스템(FDS)을 갖춘 곳은 2곳에 불과하다.

금융당국도 대포통장 근절대책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책을 수차례 내놨지만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금융사기 건수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대책이 현실과 따로 놀고 있다는 얘기다. “본인 금융정보를 남에게 알려주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공익광고를 만드는 게 더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한 한 시중은행 부행장의 조언이 사실 현실에 더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