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동욱 기자
2014.11.06 06:00:00
뇌성마비 극복한 美 조지메이슨대 정유선 교수
<될때까지 노력하는 악바리>
1989년 미국 유학길 올라 영어 도전
언어장애로 발음 안돼 좌절 겪었지만
뇌성마비 한국인 최초 박사학위 영예
<뭐든지 할 수 있다 '긍정의 힘'>
어릴 적 부모님 칭찬 덕에 밝게 자라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10살짜리 초등학생 소녀는 가을 운동회 달리기 시합에서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결승점에 다다른 아이들은 속력을 늦췄고 시합에서 뒤처진 아이들은 걸어 들어오고 있었지만 소녀는 결승점을 향해 앞만 보고 내달렸다. 전력을 다해 뛴 덕분에 이날 경주에서 소녀는 뒤에서 3등을 했다.
평범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유선 조지메이슨대 교수(44)다. 대부분은 초등학교 운동회 풍경이 먼 과거의 일이라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겠지만 그녀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그녀는 다리가 불편하다. 언어장애도 있어 긴장하면 더 말문이 막힌다. 그 상황을 두고 “다른 친구들 하는 것은 뭐든 잘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조지메이슨대 교수가 된 후 2012년엔 이 학교에서 최고 교수상도 받았다. 그녀는 이를 ‘작은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지난달 30일 이데일리·이데일리 TV 주최로 열린 제3회 세계여성경제포럼(WWEF2014)에서 발제자로 나선 그녀를 만났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건 그녀는 상당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얼굴엔 웃음과 활력이 넘친다. 매 순간 모든 것이 도전이었을 그녀의 인생사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적지 않았다.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달리기 시합도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녀에겐 하나의 도전이었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구분이 여전한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을 깨고 꿈을 쫓기란 쉽지 않다.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여성 장애인이라면 걸림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 저에게 교수가 되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제가 공부는 곧 잘한다고 보신 거죠. 전 아버지가 헛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사춘기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게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과 사진에 찍히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모순적이게도 둘 다 하고 있어요(웃음)”
별다른 비결은 없었다. 그녀가 몇 년 전 내놓은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란 책 제목처럼 꿈을 향해 정직하게 한 발짝씩 나아갔을 뿐이다.
정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란 말이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면 남들도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긴다고 믿고 있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고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만 오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장애란 스스로 심리적 한계를 긋고 자신과의 싸움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행위 그 자체라고 봐요.”
그녀는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1989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미국 생활이 쉽지 만은 않았다. ‘노력하면 다 된다’고 믿던 그녀도 영어 때문에 번번이 좌절했다. 영어를 읽고 쓰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한국말을 하는 것도 어려운 그녀에게 영어 발음은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그녀는 지금도 대화의 3분의 1 정도는 서로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살면서 처음으로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영어를 배울 때였어요.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더 힘들었습니다. 긴장돼서 말을 못한 적도 많았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때마다 흔들리는 절 잡아준 건 부모님이었어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 부모님 얘기를 자주 꺼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강연을 할 때엔 부모님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내가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뒤부터 부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되셨다”고 말했다.
정 교수의 어머니 김희선씨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로 시작되는 ‘울릉도 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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