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최태원 회장 형제는 김원홍에게 꼼짝 못했을까

by김현아 기자
2013.07.17 06:07:32

최 회장, 김원홍 통해 경영권 유지 위한 선물투자
주술적 존재 의혹도..재판부 "김원홍이 낸 녹취록 인정 못 해"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회삿돈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형제의 항소심 재판에서 김원홍 씨의 존재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최 회장 형제는 김 씨를 통해 선물옵션 투자를 한 바 있는데, 김원홍 씨는 2008년 10월부터 12월까지 SK텔레콤(017670) 등 계열사 자금을 베넥스인베스트먼트가 만들려던 펀드로 유치한 뒤 이 중 일부인 450억 원을 불법송금 받기도 했다.

검찰 수사 때나 1심 재판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항소심부터는 다른 양상이다. 김원홍 씨와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 간 전화통화 내용, 김원홍 씨와 최 회장 동생인 최재원 SK수석부회장 사이의 전화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항소심 재판부는 김원홍 씨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보이고 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김원홍의 간계에 최 회장 형제가 속았거나 김원홍과 공동으로 범죄를 모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김원홍 씨는 1961년 경주에서 태어나 1990년대 증권사에 근무하면서 높은 수익률 덕분에 ‘부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8년 8월 최 회장의 선친인 최종현 회장의 장례식에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최 회장은 최종현 회장 별세 이후 SK그룹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김 씨에게 투자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당시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3조 원의 돈이 필요했는데, SK C&C 주식을 팔아 지주회사(SK(003600)㈜) 주식을 사려면 2조 원이 부족했던 것으로 안다”며 “김 씨를 통해 선물옵션 투자를 해서 현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 형제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2008년 5월까지 급여, 부동산 처분 대금, SK 상장 계열사의 주식 매도대금 등으로 김 씨가 요구하는 투자금을 전달했고, 하지만 손실만 떠안게 됐다.

항소심 과정에서 드러난 김 씨의 위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최 부회장은 김원홍 씨와의 통화에서 본인을 “제가”로 불렀지만, 김 씨는 최 부회장을 “너에게”라고 낮춰 부르면서 편한 막내동생 대하듯 한다.



워커힐, SK텔레콤 상무 출신이자, 450억 원을 불법 송금한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의 증언으로는 최 회장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김 전 대표는 “조직개편안이 A안으로 거의 확정됐는데, 김원홍이 반대해 최 회장님이 B안으로 바꾸는 걸 보고 트라우마가 생겼다”면서 “그는 ‘묻지 마 회장님’으로 통했다”고 말했다.김원홍 씨는 2005년 SK해운 고문으로 활동할 만큼, 한 때 최 회장의 신뢰가 두터웠다.

김 전 대표는 김원홍 씨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주술적인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주술적이란 표현은 경험칙이나 자연법칙이나 이성으로 판단할 때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김원홍이 주술을 걸면 그런 일도 생긴다는 의미냐”고 되묻기도 했다.

또 “1심 과정에서 최태원 회장이 김원홍 씨와 관계를 끝냈다”는 김 전 대표의 증언에는 관심을 보이면서, 최 부회장이 김원홍 씨를 항소심 이후에도 수차례 만난 데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용선 부장판사는 “(녹취록에 최 회장 형제의 무죄 발언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녹취를 한 사람의 성격이나 위치, 당시 상황 등을 고려할수 밖에 없다”고 폄하했다.

한편 김원홍 씨는 녹취록에서 “내 땜에 이런저런 일이 생겼잖아. 형제분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홍콩으로 도피해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고 있다. 최 회장 형제로부터 받은 투자금으로 2000억 원대 보험에 가입해 사기행각을 벌이는 등 본인 범죄사실로 처벌받을까 두려워 귀국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