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지역 지정땐 ‘빨리’ 해제땐 ‘미적’

by조선일보 기자
2006.07.24 07:55:37

3년전 현장조사도 제대로 하지않고 지정
집값 떨어져도 안풀려… 세금만 많이 부담

[조선일보 제공] 서울 금천구 독산동 D아파트(30평형·96년 입주)에 사는 강정복(가명·45)씨는 요즘 “살 맛이 안 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금천구가 주택 투기지역으로 지정되기 한 달쯤 전인 2003년 6월 초 집을 샀다. 당시 매입가격은 2억원.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강씨의 집은 1억8500만원에도 팔리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서초구 잠원동 한신타워(30평형·96년 입주)는 같은 기간 3억9500만원에서 5억7500만원으로 집값이 2억원 정도 뛰었다. 강씨는 “집값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 투기지역이란 낙인까지 찍혀 있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정부가 투기 억제를 명분으로 각종 지역·지구를 마구잡이 투기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엉뚱한 곳까지 오명(汚名)을 뒤집어 쓰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지금은 전혀 투기지역 요건과 거리가 먼데도 아직 ‘투기지역’이란 딱지가 붙어있는 바람에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는 곳이 많다. 정부는 2004년 말과 2005년 초에 걸쳐 일부 지역을 투기지역에서 해제했지만 그 이후론 투기지역 해제 조치를 단행하고 있지 않다.

투기지역에서는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내야 하므로 세(稅) 부담이 높고 주택 담보대출 비율이 40% 이하로 제한되는 등 각종 제약이 가해진다. 현재 주택 투기지역은 250개 행정구역의 30.8%인 77개 지역.





주택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서울 금천구의 아파트 시세는 평당 722만원. 서울 평균(1391만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심지어 투기지역이 아닌 관악구(915만원)·성북구(867만원)·동대문구(864만원)·서대문구(842만원)보다도 낮다. 금천구의 아파트 2만3000여가구 중 평당 1000만원을 넘는 아파트는 단 한 채도 없다. 2004년 이후 연간 집값 상승률도 마이너스(-)이거나 1%대에 머물렀다. 독산동 N공인중개사 배모 사장은 “2003년 집값 급등기에 현장 조사도 없이 무턱대고 지정부터 해놓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역시 주택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부산 수영구에서는 요즘 아파트 급매물이 속출한다. 수영구 망미동 A아파트(31평형)는 300가구 중 40여가구가 매물이다. 다른 지역의 2배 수준이다. 인근 S공인중개사 경모 사장은 “망미동은 옛날부터 집값 안 오르기로 유명한 데, 무슨 투기지역이냐”면서 “집이 안팔려 이사 못가는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수영구의 투기지역 해제를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부산시는 “수영구는 최근 1년간 집값이 0.8% 하락했고, 지난 2개월도 비슷한 추세이므로 투기지역 해제 요건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재정경제부는 지정 후 6개월이 지나고, 최근 3개월 가격 상승률이 전국 평균 이하이고, 지정 이전 3개월부터 가격상승률이 전국 평균 이하인 경우 등에 한해 투기지역을 선별 해제하도록 하고 있다. 본지 부동산팀이 국민은행 주택 가격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원 장안구 ▲안산 상록·단원구 ▲평택시 ▲충남 공주·아산시 ▲대전 대덕구 등 전국적으로 10여곳이 해제 대상으로 꼽혔다. 이들 지역은 작년과 올해 집값이 떨어졌거나 상승률이 1% 안팎에 그쳐 전국 평균(4%)을 크게 밑돌고 있다. 아산시는 2005년과 올해 2년 연속 마이너스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 지역이 해제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설령 해제 요건이 충족돼도 다 해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해제 요청을 할 수 있는 건설교통부 관계자도 “1~2개월 상황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