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앞둔 남친과 바람핀 절친…어떤 복수가 정답일까[툰터뷰]

by김혜미 기자
2024.12.15 08:50:00

카카오웹툰 ''순진한 바람''의 산 작가 인터뷰
전작 ''못할 짓'',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서 소재 얻어
순진한 바람, 사이다가 터진 후의 끈적함까지 살려내
내게 조금 힘든 일, 누군가를 반파시킬수도 있다는 것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결혼을 앞두고 절친한 친구들에게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줬다.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들이었기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의 옷차림이, 행동이, 남자친구와의 느낌이 너무 이상하다. 무엇보다 가장 싫은 건 친구와 남자친구 사이를 의심하는 나였다.

(이미지=카카오웹툰)
‘순진한 바람’은 언젠가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소재를 담은 하나의 치정극이다.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친구의 관계, 의심으로만 끝났다면 차라리 더 좋았을, 실제임이 발각된 추악한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파혼한 뒤 ‘이혼보다는 파혼이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할 내용이지만, 주인공 유주는 제발 옆에 남아달라는 남자친구의 간절한 호소에 그를 떠나지 않고 정신적으로 괴롭힌다. 그리고 결혼식날, 곱게 드레스를 입고 신부화장을 마친 그녀는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본격적인 복수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복수는 과연 그녀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순진한 바람은 그저 흔한 치정극으로 끝내지 않고, 주인공이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적나라한 괴로움과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느끼는 고뇌와 혼란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공감대를 얻는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최선이었을지를 한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것도 이 웹툰의 매력이다. 순진한 바람의 줄거리를 맡은 산 작가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앞서 완결된 성인웹툰 ‘못할 짓’의 작가이기도 하다.

원래 한 글자 명사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크게 무언가를 대변하는 인상이 없고,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조어들이 만들어져도 침범당할 여지가 적은 단어라고 생각해 골랐습니다. 어감도 무게감이 있으면서 시원하고요. 쭉 함께하고 있는 어시스트 분이 계신데 이름을 나란히 적으면 산적이 되는 점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댓글이 있어요. ‘샴페인을 터트리고 난 뒤의 끈적함을 맛본 것 같은 회차네요.’ 라는 댓글인데, 작품의 커다란 결과 상통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진한 바람은 친구와 바람난 남자친구에게 복수하는 소위 사이다 서사를 차용하면서, 단순히 사이다가 터진 뒤의 끈적함을 생략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끈적함이 꼭 나쁜 감상만을 대동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특히 성인물에서는요. 샴페인을 시원하게 터트리고, 아끼는 옷과 몸을 젖히고, 또 언제까지 끈적한 상태로 살 수는 없으니까 깨끗이 씻고 잊는 것까지 생략하지 않고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금 달리고 있습니다.

유주라는 캐릭터는 평균보다 조금 약한 주인공이에요. 그런 지점에서 주인공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약하기 때문에 여기도 깨지고 저기도 깨져서 사고로 인해 받은 충격의 모든 면을 다 보여줄 수 있어요. 같은 사고를 당했을 때 머리를 다치는 사람이 있고 목을 다치는 사람이 있고 다리를 다치는 사람이 있다면 유주는 그들 모두의 합집합입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캐릭터지만, 현실 어딘가에 상황적으로나 성향적으로나 유주와 비슷한 사람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누군가를 접했을 때 무심코 나약하다고 비난해놓고 스스로 변명할 수 없도록 이런 작품을 해 둡니다.

내가 겪으며 조금 힘들고 말았던 일이 누군가를 반파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항상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늘 상기하고 삶에 적용하면서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 같아요. 가능하다면 부족한 작품이나마 제게도 독자 여러분께도 약간의 리마인드 역할을 해서, 현실 어딘가에 존재할 유주는 아주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고 금세 건강해지면 좋겠습니다.



못할짓 완결과 동시에 공백 없이 찾아뵈려면 불가피하기도 했고, 기획마다 어울리는 그림체와 작화적으로 핵심적인 부분이 다르기 마련인데 이 원고를 저보다 더 의도에 잘 맞게 표현해주실 수 있는 그림작가님이 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작 연재할 당시 춘추 작가님의 작품 ‘청소하는 대학동기’ 를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PD님을 통해 협업 제안을 드렸고 운이 좋게도 연이 닿아서 함께 작품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치중하는 장르가 있다기보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콘텐츠 위주로 범박하게 봅니다. 직업상 의도적인 부분이 있고 취향엔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일 맞아요. 많은 작가님들께서 공감하실 텐데, 웹툰을 일로 하면서 오히려 스토리 콘텐츠들과 멀어지는 것 같아요. 작업시간 문제로 보통 라디오처럼 듣기만 해도 괜찮은 음성 기반 콘텐츠를 소비하는 편입니다마는 시간이 나면 가급적 종이 활자를 읽으려고 합니다. 책도 비문학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산 작가가 그림과 글을 모두 담당했던 못할 짓.(이미지=카카오웹툰)
최초의 아이디어는 스티븐 킹의 소설 미저리에서 얻었습니다. 트라우마 속의 뮤즈라는 아이템이 성인 로맨스라는 장르와 좋게 상응할 것 같았어요. 후기에 기술했던 개인적인 경험과 결부하기도 용이해 보였고요. 노출 비디오 촬영, 폭언 및 가스라이팅 등 민감한 소재가 다수 등장하는 만큼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적합한 선택지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도 했습니다. 의도 밖에서까지 뜻하지 않은 자극이나 폭력성이 발생하길 원하지 않아서 인물을 비롯한 주요 사건 배경들을 가급적 안전하게 가져가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들 간의 격차는 있지만 캐릭터들이 대부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위치에 놓여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아주 보편성 있는 주인공들은 못 되다 보니 사랑의 경험보다는 사랑에 대한 시각이 더 많이 담겼던 것 같아요. 정보란에 실은 시놉시스에서 ‘죄와 사랑과 착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 세 가지 주제가 서로 꼬리를 물며 순환하는 이야기로 간략하게나마 요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앞서 답했던 것처럼 사실 안전함에 초점을 두느라 포기했던 부분들이 많은데요. 연재 중에도 ‘이런 타입의 주인공에 이입할 수 있을까?’ 내지는 ‘이런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사람도 이 사고의 흐름에 공감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가능한 쉽게 풀어내려고 고심했지만 실패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내보내고 나니 정말 좋은 댓글들을 많이 달아주시더라고요. 개인적인 해석을 더해주시는 분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해주시는 분들, 작품 자체의 감상을 나눠주시는 모든 분들께 언제나 마음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