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인지 예산처럼 ‘인구인지예산’ 만들어보자”[ESF2024]

by김형욱 기자
2024.06.17 05:05:00

[30]박용주 한국재정정보원장 인터뷰
인구위기 대응에 마냥 재정 투입못해
효과 분석하고 성과 평가체계 갖춰야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인구위기가 정말 중요하고 여기에 정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면, 성(性)인지 예산처럼 ‘인구인지예산’을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박용주 한국재정정보원장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부처·기관별로 흩어진 예산 사업을 한꺼번에 모아서 살펴보고 평가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원장은 오는 18~20일 열리는 ‘2024 이데일리 전략포럼’에서 재정을 주제로 한 세션의 토론에 참석한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박용주 한국재정정보원 원장
‘○○인지예산’이란 우리나라 정부의 연간 예산 중 특정 정책목표를 고려한 예산이 몇 개이고 얼마가 투입되는지를 집계하고 그 효과를 분석·평가하는 보고서다. 이 같은 보고서를 만들면 정부가 해당 정책목표에 대해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고, 그 효과가 어떤지 분석이 가능하다. 가령 지난해 약 639조원 중 성인지 예산 규모는 약 33조원,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은 약 12조원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22대 국회 들어 지역균형발전인지예산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박 원장은 “성인지예산 도입 후 남녀 화장실 상황이 개선된 것처럼 특정 정책목표에 대해 ‘인지’해야 비로소 돈이 제대로 투입될 수 있다”며 “저출생대응기획부 설립 논의가 이뤄지는 만큼 이를 추진할 때 인지예산을 별도로 만들어 볼 수 있다면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아무리 인구 위기 우려가 크더라도 만성 재정 적자가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 마냥 재정을 투입할 순 없다고 부연했다. 재정 투입에 앞서 기존 재정 운용에 대한 효과 분석과 향후 추진 사업에 대한 성과 평가 체계가 명확히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고령화 위기에 대응하고자 약 380조원(국회 예산정책처 추산치)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이를 정확히 어디에 얼마만큼 투입했고 그 효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자녀 1인당 1억원의 현금성 지원 같은 파격적인 대책이 거론되지만,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세수 감소와 재정지출 증가 전망을 고려치 않은 근시안적 대책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박 원장은 “세금을 제대로 걷어 낭비 없이 더 효율적으로 쓰고 이에 대한 성과를 평가해 이후 사업에 활용하는 재정 운용 전 과정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인구위기 대응에) 효과 있는 사업이라면 더 투입하고 효과가 떨어지는 사업은 구조를 재편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국가 채무는 나중에 ‘미래 국민’이 갚아야 할 세금”이라며 “급속하게 인구가 줄어드는 걸 막을 필요도 있지만, 세대 간 형평성을 염두에 두고 재정적으로 미래 세대가 큰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할 필요도 있다”고 부연했다.



가령 단순한 출산에 대한 현금성 지원보다는 현 저출산·고령화의 명확한 원인 분석을 토대로 20대의 결혼을 돕고 30대의 출산을 돕는 개개인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게 박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가령 부양가족 인적 공제를 파격적으로 늘린다면 현금성 지원 때의 부작용 우려 없이 출산을 장려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박용주 한국재정정보원 원장
그는 더 나아가 현 인구위기가 얼마만큼의 위기가 될 것인지 대해서도 더 정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 원장은 “현재는 국가 차원의 인력수급 계획을 10년 단위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를 30년 단위로 늘려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방향성은 잡아놔야 외국 전문인력을 받아들이는 등의 대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재정 운용 방향을 결정하는 국민 개개인이 재정을 좀 더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정보원이 단순히 재정 운용 시스템을 운용하는 공공기관 본연의 역할을 넘어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는 국민을 대상으로 재정 교육 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이유다. 재정정보원이 최근 ‘재정 마을’이란 재정 교육용 게임 1000개를 만들어 배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전 보드게임 ‘부루마블’처럼 게임을 통해 재정을 알려주는 게임이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에도 경제 교육을 하는 곳은 많이 있지만 주로 저축이나 금융, 증권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우리 삶에 밀접한 재정 교육을 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민이 재정을 더 잘 이해하고 납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줄일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강대 경제학 학·석사 △독일 쾰른대 경제학 박사 △기획예산처 과장 △국회예산정책처 재정분석과장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심의관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국장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한국재정정보원 재정정보분석본부장 △한국재정정보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