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3.11.06 06:00:00
양대 노총이 지난달 하순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 공시 의무화 방침에 따르기로 결정한 뒤 산하 노조가 속속 회계 공시에 나서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어제 기준, 양대 노총 가입 노조 56곳이 회계를 공시했다. 양대 노총 비가입 노조를 더하면 92곳에 이른다. 양대 노총 가입 노조(미노조 단체 포함) 가운데 회계 공시 대상이 550여 곳인 데 비하면 공시 실행률이 10% 수준에 불과하지만 올 연말 이전에 거의 대부분이 회계 공시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23일, 민주노총은 그 다음 날 회계를 공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노조법과 소득세법의 시행령을 개정해 회계를 공시하지 않은 노조의 조합원은 노조에 낸 회비에 대해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회계 공시 요구를 노조 탄압이라며 거부해온 기존 입장을 계속 유지하면 조합원이 금전적 불이익을 받게 되자 뒤늦게 선회한 것이다.
정부로서는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노조 개혁에서 첫 성과를 낸 셈이다. 하지만 다양한 다른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 노조 개혁은 갈 길이 멀다. 이번 회계 공시 성과는 시행령 개정을 통한 것이어서 법률적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다. 양대 노총이 “상위법에 위임 근거가 없는 꼼수 시행령 개정”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가 노조법 등 상위법을 손봐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밖에도 2011년 복수노조 도입 이후 새로 설립된 노조를 상대로 한 기성 노조의 갑질 제재, 노조 전임자의 근로시간 면제 남용에 대한 감독 강화 등 노조 개혁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MZ노조인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의 송시영 위원장은 민노총과 더불어민주당 등이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조치에 대해 노동 탄압이라고 반발한 데 대해 “상식이자 기본 아니냐, 그럼 노조 회계가 투명해야지 더러워야 하냐”고 뼈있는 소리를 냈다. 노동 탄압 주장이 억지라는 것이다. 정부는 회계 공시 성과를 계기로 노조 개혁을 보다 빨리 힘 있게 추진해야 한다. 또한 양대 노총만 바라보지 말고 변화하는 노동 현장의 밑바닥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