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국인 박사 10명 중 6명 ‘학위 따고 본국으로’

by신하영 기자
2023.08.10 05:30:00

학령인구 감소에 서울대 공과대학원도 미달
외국인 박사 학위 취득, 5년 사이 7.6%p ↑
박사 취득 외국인 10명 중 3명만 한국 정착
“한국 이해 높은 외국인 인재 이민 지원을”

[이데일리 신하영·김형환 기자] “힘들게 키워놓은 제자들이 학위 취득 후 본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9일 수도권 공대 대학원 A교수의 토로다. 학부와 마찬가지로 대학원도 신입생 충원난 탓에 외국인 유학생을 뽑게 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학위 취득 후 본국으로 귀국한다는 얘기다. 현재 A교수의 연구실에는 10명의 대학원생이 재학 중이며 이 가운데 4명이 외국인 학생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반도체공동연구소 협의체 출범식 참석 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시설을 견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반도체·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 국가 간 기술 경쟁이 심화하고 있지만, 기술 경쟁력의 토대가 되는 이공계 대학원은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 6월 펴낸 ‘2022 과학기술 인력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자는 2018년 2만8333명에서 2022년 2만6845명으로 오히려 뒷걸음쳤다. 서울대 대학원도 학생 모집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서울대가 2020년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연도 1학기 서울대 공과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의 입학경쟁률은 0.87대 1로 2017년부터 4년째 미달이다.

어렵게 대학원 신입생을 충원해도 학위 취득 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국내 박사 학위 취득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 학생은 1944명으로 2012년(473명)보다 4배 증가했지만, 이 중 62%(1205명)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취업 등으로 국내에 남은 외국인 박사는 29.8%(579명)에 그쳤다. 이들의 본국 귀국 비율은 5년 전인 2016년(40.9%)보다 21.1%포인트 늘어났으며, 한국 거주 비율은 2016년(39.1%)보다 9.3%포인트 줄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분야에선 무엇보다 인재 확보가 중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오는 2030년에 필요한 반도체 인력은 12만7000명이지만 공급 인력은 5만명 수준으로 전망된다. 향후 7년 뒤 반도체 분야에서만 7만7000명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앞서 교육부는 작년 7월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력 15만명 양성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인재 양성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올해 4월에는 반도체·인공지능·에너지·신소재 등 첨단기술 분야의 대입 정원 1829명을 증원하기로 했지만, 관련 업계에선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첨단분야에서 기술 초격자를 유지하려면 석·박사급 인재가 확충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공계 인재의 의대 쏠림 심화도 과학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KISTEP의 과학기술 인력 통계에 따르면 국내 과학고·영재고 졸업자의 의대 진학률은 2018년 3.4%(80명)에서 2022년 3.6%(85명)으로 0.2% 증가했다. 2021년부터 과학고·영재고 졸업자가 의대에 진학하면 재학 중 혜택받은 교육비·장학금을 환수 조치하고 있지만, 이런 제재를 감수하더라도 의대에 가려는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 진학자들의 의대 쏠림도 문제다. 종로학원이 지난 2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곳을 조사한 결과 최근 5년(2018~2022년)간 중도탈락생이 1006명으로 집계됐다. 종로학원은 이들 중 80% 이상이 의대 등 의학계열로 이탈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과학기술 분야 석·박사급 인재를 확보하려면 처우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KISTEP의 과학기술인력 통계를 보면 이공계 대학·대학원의 2021년 기준 박사급 초임 급여 평균은 의학계열이 월 938만9000원, 공학계열이 597만8000원, 자연계열이 467만6000원이다.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은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고용안정과 고연봉이 보장되지만 이공계 박사는 그렇지 못하다”며 “정부가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이공계 인재들을 전폭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학령인구 감소로 외국인 학생 유치가 불가피한 만큼 이들을 정착시킬 취업·이민정책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나승일 서울대 산업인력개발학과 교수는 “외국인들이 전문성을 살려 국내에 취업, 정착한다면 저출산과 이공계 인력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방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정부도 해외 인재의 국내 정착을 위해 나섰다. 법무부는 올해부터 과학기술 분야 유학생이 학위 취득 후 국내에 정착하도록 하는 ‘과학·기술 우수 인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을 본격화했다. 이는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KAIST·DGIST·GIST·UNIST·UST)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이 연구경력·실적을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영주권을, 연구실적이 우수하면 국적심의위원회를 거쳐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는 제도다.

김영철 한국연구재단 사무총장은 “국내 대학으로 유입된 외국인 유학생들을 한국에 정착시키는 이민정책을 장려해야 한다”며 “이들은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한국어도 비교적 능숙하기에 졸업 후 취업 지원을 통해서라도 국내에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고·영재학교 졸업생의 계열별 진학 현황(단위: 명, %,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