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3.07.12 05:00:00
채용 비리와 직무 태만 등으로 복마전 비난을 자초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총체적 도덕불감증을 보여주는 증거가 또 무더기로 나왔다. 감사원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선관위 직원 1925명 중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청탁금지법을 위반해 금품을 받거나 해외 여행 경비를 지원받은 사람은 무려 128명(6.6%)에 달했다. 노정희·노태악 대법관 등 전·현직 중앙선관위 위원장은 매달 290만원, 비상임위원들은 215만원씩의 위법한 수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청렴·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지켜야 할 헌법기관의 부도덕한 일탈이다.
보고서 내용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시·군·구 선관위는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되는 비상임 선관위원 9명에게 지급될 1인당 6만원의 회의 참석 수당을 총무 역할의 위원 1명에게 몰아준 후 이 돈을 직원들이 제 돈처럼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선관위원은 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이 나중에 출마할 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재직 중 직원들에게 잘 보이려 한다는 점을 틈탄 암묵적 짬짜미다. 국민 세금을 조직적으로 유용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런데도 중앙선관위는 “상급자인 선관위원이 직원에게 금품을 주는 것은 금액 제한없이 가능하다”는 내부 공지를 수차례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는 비상임 선관위원은 공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감사원 해석이다. 업무와 관계있는 사람들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점에서 청탁금지법 위반이 명백한데 윗선이 위법을 부추긴 셈이다. 중앙선관위는 더구나 권익위원회에 문의해 보지도 않고 멋대로 해석해 공지했다. 위에서 아래까지 전 조직이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어떤 견제·감시도 받지 않으면서 고용 세습으로 자신들만의 이익 카르텔을 만들기 바빴다. 대선 때는 투표 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기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저질렀다. 유권자에게는 밥 한끼만 잘못 얻어먹어도 밥값의 최고 50배 과태료를 물리면서도 뒤로는 비리가 만연했다. 자정 능력을 상실한 이런 기관에 왜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나. 일벌백계와 고강도의 충격 요법을 통한 개혁을 서둘러야 선관위도, 나라도 바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