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삶의 무늬"…'빛'에 몰입한 두 작가의 만남

by이윤정 기자
2023.02.07 05:30:00

'리플렉션 앤 리프랙션'전
헬렌 파시지안 '구' 조각품
김택상 작가 '숨빛' 선보여
3월 11일까지 리만머핀 서울 갤러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활동하는 헬렌 파시지안(89)은 1960년대 미니멀리즘의 하위 예술 운동으로 발전한 ‘빛과 공간 운동’의 선구자다. 에폭시, 플라스틱, 레진 등의 산업재료를 응용한 그의 작품은 반투명한 표면이 빛을 여과하는 동시에 머금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김택상(65) 작가는 한국 포스트 단색화의 주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물과 빛이 흘러나오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오묘한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헬렌 파시지안의 작품(무제·왼쪽)과 김택상 작가의 ‘썸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Somewhere over the rainbow’(사진=리만머핀 서울).
나이도, 활동 지역도 전혀 다른 두 작가가 한 전시에서 만났다. 서로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을 이어준 건 다름 아닌 ‘빛’이다. 오는 3월 11일까지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 갤러리에서 열리는 2인전 ‘리플렉션 앤 리프랙션’(Reflections and Refractions·반사와 굴절)에서 김 작가는 빛이 주는 촉각적 경험을 캔버스에, 파시지안은 조각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작가의 작품 총 22점을 만나볼 수 있다. 리만머핀 서울의 손엠마 수석 디렉터는 “파시지안은 어렸을 적 캘리포니아 호수에 강하게 햇빛이 반사되는 모습에 매료돼 작업을 시작하게 됐고, 김택상 작가는 강원도의 개울가에서 반짝이는 물속에 있는 조약돌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며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두 작가가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빛과 공간을 탐구했는지 보여주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김택상 작가는 리안갤러리를 통해 소개되면서 국내 컬렉터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서울 금호미술관, 일본 도쿄 요코가와일렉트릭 등 국내외 사립·공립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청주대학교 비주얼아트학과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그의 ‘숨빛’(Breathing Light) 연작은 물의 반사적 요소와 그에 따른 빛의 특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가의 작업은 중력과 바람, 빛이 어우러지는 과정이다. 아크릴 물감을 푼 용액을 캔버스 천 위에 가득 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석된 입자가 캔버스 표면 위로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색을 흡수한 캔버스에 하나의 색이 쌓이면 남은 물은 버리고 캔버스를 건조시킨다. 작가는 캔버스 표면이 ‘빛이 숨쉬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같은 과정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한다.

김 작가는 “작품은 곧 ‘삶의 무늬’와 같다”며 “나의 작업에 ‘완성’은 따로 정해놓은 것이 없고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으면 그때 작업을 그만둔다”고 설명했다.

이어 “헬렌 파시지안과 나는 빛을 주요 관심사로 다루지만, 빛 자체를 그리거나 조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담아내고 발산하는 구조를 구현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우리 모두 물감 등의 기존 재료만으로는 빛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했고, 빛의 본질을 포착하는 과정에 더욱 깊이 몰두했다”고 덧붙였다.

파시지안의 대표작인 ‘구’(Spheres) 연작은 1층에 전시돼 있다. 구형 조각에 빛이 스며들면 빛과 반사면, 내부에 주조된 형태 간 상호 작용으로 왜곡, 환영, 굴절, 프리즘이 발생한다. 조각들은 가까이 다가오는 동시에 물러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듯 보인다. 파시지안의 작품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오리건주 포틀랜드 미술관 등 전 세계 유수의 기관에 소장돼 있다.

‘리플렉션 앤 리프랙션’ 전시 전경(사진=리만머핀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