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퇴직연금 깨우자'…300조 퇴직연금 시장 '지각변동'
by김소연 기자
2022.07.12 05:12:00
퇴직연금 전문기관이 맡아 운용…수익률 제고 기대
실적배당형 투자 늘어날 것…다양한 투자 관심 ↑
2024년 퇴직연금 적립금 400조원 돌파 전망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12일부터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시행된다. 오는 10월 중에는 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은 디폴트옵션 상품이 공시될 예정이다. 상품 공시 이후 빠르면 연말 기업과 근로자간 퇴직연금 규약을 변경해 디폴트옵션 지정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그동안 퇴직연금은 주로 원금보장형 상품 위주로 운용돼 왔지만,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인해 다양한 투자 상품으로 저변을 넓힐 전망이다. 가입자들은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퇴직연금 적립금을 다양하게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30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1일 고용노동부와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앞서 정부는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디폴트옵션의 주요 내용을 규정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오는 12일부터 퇴직연금 확정기여형(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디폴트옵션이 도입된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DC형·IRP 퇴직연금에 가입한 후 자금을 방치하고 있는 경우, 사전에 가입자가 운용을 지시한 방법대로 전문기관에서 대신 운용해주는 제도다. 지금까지 가입자들은 주로 예·적금 상품에 퇴직연금을 가입한 이후 그대로 퇴직연금을 방치해왔다. 이제는 전문기관인 금융회사가 내 퇴직연금을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알아서 굴려줄 수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디폴트옵션 제도는 가입 당사자가 연금 적립금 운용을 하기보다 전문가에게 운용을 전환하는 것”이라며 “연금적립금의 운용지시 권한을 가입자(근로자)에서 전문가(연금 사업자)로 전환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1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90조원이던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2021년 295조6000억원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대부분 원금보장형(86.4%, 255조4000억원)이 차지해 최근 5년 퇴직연금 연환산 수익률은 1.96%에 그친다. 5년 평균 임금상승률을 밑도는 수준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은행이나 보험의 원리금 보장 상품에 가입하고 만기가 도래한 이후에도 별다른 운용지시를 내리지 않아 수익률이 예금 수준에 갇혀 있는 것이다.
미국, 영국, 호주 등 먼저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주요 선진국의 퇴직연금은 연 평균 6~8%의 안정적 수익률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은 DC형, 개인형 퇴직연금이 전체 은퇴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는다. 미국 DC형 퇴직연금인 401k의 원금보장형 투자 비중은 20%미만이고 대부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원금보장형에 86%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비중은 줄고 원금비보장형(실적배당형)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디폴트옵션이 실제로 적용되는 순서는 가입자의 운용지시 없이 4주가 경과하면 가입자는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된다는 통지를 받는다. 가입자가 디폴트옵션 운용 통지 이후에도 별도의 운용지시를 하지 않고 2주가 경과하면 그때 디폴트옵션이 적용된다. 사전에 지시했던 대로 운용이 이뤄지는 것이다. 만약에 디폴트옵션으로 운용하다 가입자가 원하면 언제든 다른 방법으로 운용지시를 할 수 있다.
디폴트옵션 상품은 장기투자에 적합한 펀드와 원리금보장상품, 펀드와 원금보장 상품을 혼합한 포트폴리오로 구성된다. 은퇴연령 등 투자 목표 시점에 따라 위험자산 편입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생애주기펀드(TDF), 부동산인프라펀드, 머니마켓펀드(MMF), 사회간접자본(SOC)펀드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10월 중에는 심의를 거쳐 승인된 디폴트옵션 관련 상품이 공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는 사용자(기업)과 가입자에게 제시할 디폴트옵션 방법을 마련해 고용노동부 소속 심의위원회에 신청하게 된다. 디폴트옵션 상품은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고 고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디폴트옵셩 상품은 ‘○○증권 디폴트옵션 중위험 TDF’와 같은 방식으로 퇴직연금 사업자명, 위험등급, 운용유형 등을 이름에 담게 된다.
기업에 다니는 근로자가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기까지는 빠르면 연말은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근로자 간 내년 연봉협상 등을 하면서 디폴트옵션 도입도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퇴직급여법에는 기업이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가 제시한 디폴트옵션을 근로자 대표 동의를 거쳐 퇴직연금 규약에 반영하도록 돼 있다. 가입자는 퇴직연금 사업자·기업이 제시한 7~10개 디폴트옵션 상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운용 지시를 미리 하게 된다.
정부는 법 시행 이후 1년간 유예기간을 부여할 방침이다. 전산시스템 구축이나 디폴트옵션 승인 기간, 가입자 안내 등 시간이 필요해서다. 정부는 1년간 행정지도를 중심으로 제도 도입을 유도하고 내년 7월12일부터는 모든 사업장과 IRP 가입자가 디폴트옵션을 도입해 운영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강 연구원은 “2016년 이후 DC형과 IRP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연평균 20% 증가해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증가율을 상회하고 있다”며 “연간 18~20% 증가세를 유지할 경우 2024년 적립금 규모는 200조~210조원 규모,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4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