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코드레드]와인 농장에 느닷없는 서리…이상 현상 급증
by방성훈 기자
2021.08.11 05:01:02
폭염·폭우·한파·홍수 등 세계 곳곳서 기상이변
프랑스 와인농장, 갑작스런 서리에 폭삭
아마존, 더이상 ‘지구의 허파’ 아냐…탄소배출 더 많아
“기후변화發 자연재해…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
| 지난 2018년 이상기후 현상으로 메말라버린 말라위의 칠와 호수.(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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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지구촌 곳곳에서 강수 패턴이 변했으며, 북극 해빙 및 눈덮힘, 빙하 감소, 해양산성화 등 이상 기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토(冬土) 시베리아와 미국·캐나다, 그리고 이탈리아·그리스 등지에서는 언젠가부터 매년 가뭄·폭염에 따른 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과 서유럽에서도 폭우·홍수 등이 발생하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 일부 지역에선 산소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게 됐고, 아프리카에선 기후변화로 사바나 초원에 가뭄이 도래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지구촌 전역에서 이같은 재앙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게 된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2021~2040년 중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5℃를 넘어설 것으로 분석했다. 1.5℃ 상승폭은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온도다. IPCC는 1.5℃ 상승에 도달하는 시점을 2021~2040년으로 봤다. 지난 2018년 특별 보고서에서 제시한 때보다 9~12년 앞당겨진 것이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선 한 달 동안 내려야 할 비가 3시간만에 한꺼번에 쏟아졌다. 순식간에 지하철이 잠기고 도로 위의 차량들이 침수됐다. 템즈강이 역류해 범람하면서 런던 내 많은 지역이 물에 잠겼다.
서유럽과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14~15일 독일과 벨기에 등 서유럽에서는 두 달 동안 내려야 할 비가 이틀 동안 한꺼번에 쏟아졌다. 이 때문에 강이 범람해 홍수가 일었고 2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집들이 물에 잠기거나 무너졌고 산사태도 줄을 이었다.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벨기에에서는 지난 24일 뇌우를 동반한 집중호우가 또다시 발생, 피해 규모를 키웠다. 중국 허난성에서는 지난 16일부터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정저우를 비롯해 수많은 지역이 물에 잠기고 인적·물적 피해가 속출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느닷없이 서리가 프랑스 전역을 덮치는 일도 있었다. 프랑스는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한낮 기온이 26℃까지 오르는 등 이상고온을 겪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기온이 영하 6~7℃까지 떨어졌고, 이 때문에 프랑스 전역의 농장은 서리로 뒤덮였다. 특히 프랑스 주요 수출 상품인 와인 농장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
유럽와인협회(ECWC)에 따르면 프랑스 주요 포도 재배지의 80%가 영향을 받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연간 수확량의 최소 25%, 최대 50%가 소실됐다. CNN방송은 “프랑스 와인 생산자들이 ‘잔인한’ 기후변화와 싸우고 있다. 기후변화로 포도 나무들이 더 빠르고 일찍 자라게 돼 추위에 민감해졌다. 기후변화는 수확량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도 뿐 아니라 고추, 사과, 살구 등을 경작하는 농장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농업 재난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대응에 나섰으나, 프랑스 전국농민연합은 “필요한 것은 기후변화 위기 대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 카스텍스 프랑스 총리는 “1991년 이후 이같은 기상 이변을 겪은 적이 없다”고 했다.
| 프랑스 남부 에스피라-데-라글리의 포도밭.(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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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던 아마존마저 기후변화 등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농림과학원(INRA)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지난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아마존 유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대한 위성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브라질의 아마존 유역의 이산화 배출량은 166억t으로 같은 기간 흡수한 양(139억t)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4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논문이 네이처에 게재됐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INPE)는 자국 영토 내 아마존 산림인 ‘아마조니아 레가우’를 연구한 논문을 공개했다. 논문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이 산림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연간 15억t으로, 삼림에 흡수된 양(5억t)의 세 배에 달했다.
같은 날 아마존 열대우림을 연구해온 과학자들의 모임 아마존 과학 위원회(SPA)는 성명을 내고 아마존 우림에 대한 파괴가 토착 식물 8000여종과 동물 2300여종을 멸종 위험에 몰아 넣었다고 경고했다. 인위적인 산림 파괴 외에도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화재 등으로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 또는 ‘동·식물들의 낙원’으로써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이같은 이상기후 현상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즉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재난 강도가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점, 아울러 기후변화 위기는 단기간 내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후난민도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매년 평균 2310만 명이 자연재해로 이재민이 됐다. 선진국도 예외 없다. 독립적인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IDMC)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재난으로 실향한 미국인은 1000만명에 육박한다. 이 중 2020년에만 약 171만명이 발생했다.
이에 기후변화에 안전지대는 지구촌 어디에도 없으며, 기후변화 앞에선 선진국도 개발도상국이나 저소득국을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하다는 경고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마저 기후변화를 늦출 준비도, 기후변화 속에 살 준비도 전혀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티 에비 미 워싱턴대 교수는 “우리는 기후변화로 날씨가 계속해서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평균 온도는 올라갈 것이고 폭염은 더 자주 길게 발생할 것이다. 폭염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레딩 대학의 제스 노이만 교수도 “폭우 및 이에 따른 홍수가 영국과 유럽 전역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며 “홍수의 심각성과 빈도는 우리가 기후 변화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명백한 경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