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힘들 때마다 "수수료 내려라"..동네북 된 카드사
by유재희 기자
2018.07.19 05:00:00
정부·지자체·소상공인 전방위 압박
수수료 인하 법안 14건 국회 계류
"10년간 가맹점 수수료 9회 내려…
카드업계 종사자 어려움도 봐달라"
[이데일리 유재희 유현욱 기자] “카드사들이 동네북 신세가 된 것 같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는 최저임금 인상 이야기를 꺼내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카드사가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면 ‘동네북’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연초부터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언급한 이후 6·13 지방선거를 전후해 자치단체장 후보들이 이에 동조하듯 ‘수수료 제로 ○○페이’를 공약하며 큰북을 울려댔다. 여기에 정부까지 나서 올 하반기에 소상공인 전용 결제시스템(소상공인페이)을 구축해 결제수수료를 0%대로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여당을 필두로 온라인 가맹점 수수료 우대, 소액결제 수수료 면제 혹은 우대 등 수수료 인하와 관련한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 개정안을 14건 발의한 상태다. 특히 올해는 3년마다 진행되는 수수료 원가 재산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례적으로 기획재정부와 중기벤처부 등이 관련 태스크포스(TF)에 참가해 내년부터 적용할 새 수수료율뿐만 아니라 영세중소가맹점 범위, 의무수납제 폐지 등을 함께 다룰 방침이다. 정부, 여당, 지자체, 소상공인연합회 등이 전방위로 카드수수료 압력을 가하면서 카드사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가맹점수수료 인하와 카드론(신용대출), 현금서비스 등 대출금리 인하 압력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카드사의 수익성은 악화일로다. 실제 골목상권 또는 영세자영업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카드 수수료 인하가 대책으로 거론되면서 지난 10년간 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실질적으로 9차례 인하됐다. 그 결과 2007년 4.5%였던 카드 수수료율 상한이 현재 0.8~2.3% 수준까지 낮아졌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7개 주요 카드사의 카드손익률은 2013년 9.9%에서 지난해 7.9%로 크게 낮아졌다. 당기순이익도 지난 2014년 총 2조 719억원에서 2016년 1조 8761억원으로 감소했다가 지난해 대손비용이 감소하면서 겨우 2조원대를 회복했다. 카드 시장 규모와 카드 이용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수수료 인하로 수익성이 뒷걸음질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카드수수료 인하에 따른 카드사의 수익 감소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첫 카드수수료 체계를 개편할 때에도 카드사들은 3000억원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산했고 손실 보전을 위해 기업 마케팅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부가서비스 혜택을 대폭 축소했다.
카드사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수치보다 더 혹독하다. 대부분 카드사 사장들은 구체적인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고음이 울리는 현실을 앞에 두고 차마 발길을 뗄 수 없어서다. 일부 하위권 카드사의 경우 외부 입김에 자칫 성장판이 닫혀 영원히 하위권에 머무를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벼랑 끝까지 내몰리면서 내부적으로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며 “정치권이 중소 자영업자에 매몰돼 카드업계 및 PG사 등 유관 업계 종사자들의 어려움은 보지를 못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한 마케팅비까지 쥐어짜 수수료를 내리라는 일각의 요구는 카드사 간 경쟁을 내팽개치라는 말과 같다”며 “머지않아 도산하는 카드사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돌고 있어 혹시 우리 회사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시름이 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