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평가 '옐로카드' 기관장 비상.. 文 정부 물갈이 꿈틀

by최훈길 기자
2017.06.19 05:30:00

기재부 경영평가 기관장 9명 ''경고''..작년 3배↑
불안한 공공기관 "알아서 나가라는 뜻"
노조 "성과연봉제 강행 낙하산 사퇴해야"
사측 "보장된 법적 임기 있는데 쫓아내나"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장 교체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는 경영평가에서 부진한 평가를 받은 공공기관의 기관장에 경고 처분을 내렸다. 노조는 즉시 자진 사퇴를 하지 않으면 퇴진투쟁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가 있는 기관장을 쫓아내는 게 아니냐는 반발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19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 17개 기관이 부진 평가(D~E) 등급을 받았고 이 중 기관장 9명이 경고를 받았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평가대상 공공기관이 정해지면 교수 등으로 구성된 경영평가단(올해 109명)이 전년도 경영실적을 평가한다.

올해는 경고를 받은 기관장이 지난해(3명)보다 3배나 늘어났다. 이들 기관장 9명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곽성문 사장, 울산항만공사 강종열 사장, 한국가스공사 이승훈 사장, 부산항만공사 우예종 사장, 한국세라믹기술원 강석중 원장, 아시아문화원 김병석 원장, 한국지식재산전략원 변훈석 원장, 한국석유공사 김정래 사장, 영화진흥위원회 김세훈 위원장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영진위 김 위원장은 지난달 사퇴했다. 나머지 8명 임기(총 임기 3년)는 3개월~1년여 이상 남아 있다.

경영평가 페널티로는 경고와 해임 건의가 있다. 경고를 두 번 연속 받으면 해임 건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들 기관장 9명 모두 경고를 한 번씩만 받았기 때문에 해임 건의 대상은 아니다. 법적으로도 이들 모두 임기가 보장돼 있다. 다만 부진 평가(D~E) 등급을 받은 공공기관 17곳 모두 성과급을 받을 수 없다. 정기준 기재부 공공정책국장은 “경고를 한 번 받은 기관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옐로 카드를 받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16일 경영평가 발표 이후 18일 현재까지 사퇴 입장을 밝힌 기관장은 없다.



하지만 실제 공공기관이 느끼는 분위기는 다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레드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부진한 경영평가를 받은 기관부터 물갈이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경고를 받은 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알아서 판단해 스스로 나가라’는 뜻 아니겠는가”라며 “정권이 바뀌어서 관료들이 물갈이를 서두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지난 16일 경영평가 결과와 성과연봉제 폐지안을 동시에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올해 경영평가 관련 내용이 사전에 유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유출돼 알려진 내용과 실제 경영평가 결과가 거의 비슷했다”며 “공공기관들이 불안하니까 빨리 알아본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는 ‘퇴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낙하산 인사, 성과연봉제를 무리하게 추진한 기관장은 나가라는 요구다. 민주노총·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탄압에 앞장서 왔던 일부 박근혜 낙하산 기관장들은 즉시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갑용 한국노총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이데일리 통화에서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불법·강압행위, 인권유린을 한 기관장들이 있다”며 “대상 기관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본인들이 물러나지 않으면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노사 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곳은 대상 공공기관 120곳 중 30곳이 넘는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한 사측 고위관계자는 “경고를 받았지만 사장이 자진 사퇴한다는 얘기는 없다”며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됐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나가라고 하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