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같은 공약, 다른 잣대'..자기모순에 빠진 한국당

by임현영 기자
2017.06.01 05:00:00

문재인 후보시절 공약 위반에 초강수
1년 전 세비반납 공약에는 ''모르쇠''
상황 유불리에 원칙을 맘대로 재단

옛 새누리당 의원 56명이 작년 총선 직전 ‘세비 반납’을 약속했던 광고
[이데일리 임현영 기자] 자유한국당 의원 70여명은 31일 오후2시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피켓에는 ‘위장전입 이낙연 문재인은 철회하라’ ‘인사실패 협치포기 문재인정부 각성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자유한국당 의원 전원은 이날 본회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날 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1년 전 ‘세비반납’ 약속을 지켰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당시 약속했던 5대 개혁과제 법안을 모두 발의했으므로 계약 내용을 이행했다는 것이다. 발의한 법안 중에는 이날 오전 허둥지둥 발의한 법안(고용정책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도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모습을 지켜보며 떠오른 말이다. 당에 불리한 사안에는 원칙을 슬쩍 뭉개지만 유리한 사안에는 원칙을 강하게 몰아세우고 있어서다.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원칙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자기모순 행태에 대중들의 시선이 점점 싸늘해져 간다.

우선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에 대해 ‘약속’ ‘도덕성’ 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자신의 후보시절 공약을 어겼다며 몰아세웠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5대 비리자 고위공직자 임용배제’라는 공약은 당연히 지켜야할 약속”이라며 “이를 실천하려면 자신이 국민에게 한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칙에 대한 한국당의 집착은 본회의장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70여명의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고 지도부는 정세균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했다 .야당 합의없이 안건을 상정하는 것은 협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격렬한 항의를 이어가던 한국당은 정 의장에게 본 회의 직전 의원총회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당초 오후 2시에 예정된 본회의는 1시간 반 가량 늦춰졌다.

오후 3시30분. 의총을 끝낸 한국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그러나 정 의장이 안건을 상정하자마자 곧바로 퇴장했다. 사실상 ‘보이콧’ 선언이었다. 그리고 국회 본회의장 계단에서 다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이낙연 지명 철회’를 외쳤다. 한국당 의원 전원이 빠져나간 본회의장에선 이 후보자 표결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참석한 188명 의원 중 164명이 찬성했다.

그러나 옛 새누리당 시절 세비반납 공약에선 그들이 말하던 ‘원칙’은 온데간데 없다. 정확히 1년 전 새누리당 의원 56명은 총선을 앞두고 ‘5대 개혁과제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1년 치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공약했다. 주요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게재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5개 과제 중 통과된 법안은 없었다. 계류 중인 법안만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마감시일 직전 부랴부랴 발의한 법안도 있었다. ‘발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는 누가봐도 ‘공약 파기’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섣불리 내세웠다는 사과가 선행돼야 하지만 한국당 측은 ‘법안 발의는 하지 않았느냐’며 ‘약속을 지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당당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을 위반하자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같은 공약(公約)임에도 정반대 잣대를 대고 있다. 이것이 한국당식 원칙이자 민주주의라면, 여기 동의할 국민들이 몇이나 될까. 참고로 당시 서명했던 바른정당 의원 6인은 이날 사과 기자회견으로 최소한의 염치를 지켰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이낙연 총리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