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 '딸 경영' 전성시대

by김진우 기자
2016.06.20 03:58:46

형지·세정·영원무역 등 1세대 패션업체 2세대 딸 경영으로 이동
삼성·신세계 등 대기업 계열 패션기업도 딸들의 맹활약 이어져

[이데일리 김진우 기자] 패션업계에 ‘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 섬유산업의 태동기인 1960~70년대 사업을 시작해 자수성가한 1세대에 이어 2세대 딸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성공한 토종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신세계 등 대기업 계열 패션기업 여성 경영인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패션산업이 여성의 섬세하면서도 남다른 감각이 돋보일 수 있는 영역이란 점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다.

△(왼쪽부터)최혜원 형지I&C 대표, 박이라 세정과미래 대표,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 대표
19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업계의 오랜 맞수인 패션그룹형지와 세정그룹은 2세 딸 경영에서도 닮은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병오(63) 패션그룹형지 회장과 박순호(70) 세정그룹 회장은 밑바닥부터 사업을 시작해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회사를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부산에서 태어났거나(최 회장) 부산에 본사를 두는 등(박 회장) 사업 기반이 영남에 있다는 점도 닮았다. 최 회장과 박 회장은 비슷한 ‘성공 스토리’뿐 아니라 여성복 브랜드(형지 올리비아하슬러·세정 올리비아로렌) 상표권을 놓고 법정분쟁을 벌이며 라이벌 이미지를 굳혔다.

패션그룹형지가 지난 16일 자로 최 회장의 장녀인 혜원(36) 씨를 계열사 형지I&C(011080) 대표로 임명하면서 세정그룹과 2세 딸 경영에서도 라이벌 구도가 성립되고 있다. 박 회장의 막내딸인 이라(38) 씨는 2007년부터 세정과미래 대표를 맡으며 일찌감치 경영에 참여해 왔다.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과 박 회장이 모두 산업현장의 현역으로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대교체가 본격화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두 딸들이 후계구도를 위해 어떻게 경영수업을 쌓고 계열사 대표로서 어떤 성과를 보일지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원무역(111770)과 영원아웃도어의 지주회사인 영원무역홀딩스는 지난 3월 성기학(69) 회장의 차녀인 래은(38) 씨를 대표이사로 임명하며 차기 구도를 밟고 있다. 영원무역은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을 하는 국내 대표업체이고, 영원아웃도어는 노스페이스 등 아웃도어 브랜드를 전개하는 의류회사다.

성 회장은 슬하에 시은·래은·가은 딸 셋을 두고 있는데 장녀는 그룹 대주주인 와이엠에스에이(YMSA)의 사내이사로 있고, 3녀는 영원아웃도어에서 경영 전반을 담당하는 상무로 근무 중이다.

△이서현(왼쪽)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삼성물산(028260) 패션부문(구 제일모직)의 이서현(43) 사장과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 등 패션업체를 계열사로 둔 신세계(004170) 정유경(44) 총괄사장의 활약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 사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 정 사장은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맏딸로 두 사람은 사촌지간이다.

이 사장은 지난해 말 삼성물산 패션부문 ‘원톱’으로 올라선 이후 남성복 브랜드 ‘준지(JUUN.J)’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패션업계 행사인 ‘제2회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컨퍼런스’에서는 기조연설자로 나서 “삼성이 이상적인 시장으로 떠오른 K(한국) 패션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지난해 신세계인터내셔날을 연 매출 1조원 회사로 키웠다. 국내에 아르마니(ARMANI)와 디젤(DIESEL) 등 글로벌 명품 패션브랜드를 직수입하며 국내 시장을 키운 데 이어 ‘영 캐주얼’인 디자인유나이티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 등을 전개하며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