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한정화 중기청장 "높은 재벌의존도가 강소기업 탄생 걸림돌"
by박철근 기자
2015.06.02 03:00:00
해외진출·CEO 기업가정신으로 지속성장 꾀해야
불공정거래에 대한 대기업 제재수위 높여야
실패한 기업인 재도전 위한 금융ㆍ법률 규제 철폐 주력
[이데일리 대담=류성 벤처중기부장, 정리= 박철근 기자] “국내 벤처·중소·중견기업의 가장 큰 한계는 삼성, 현대자동차(005380) 등 대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데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로 대기업의 1·2차 협력사인 중소기업에 정부가 아무리 지원하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는 결국 대기업에게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지난달 28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가진 한정화(61) 중소기업청장은 대기업에 말목이 잡혀있는 현재의 국내 중견·중소업계의 산업구조로는 “독일의 히든 챔피언과 같은 글로벌 강소기업이 탄생하기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구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 청장은 “매출 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 가운데 70%, 중견기업의 60% 가량이 B2B(기업간거래) 사업 중심”이라며 “이들 대부분이 대기업 하청업체로 사실상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보니 대기업의 가격정책에 중소기업이 흔들릴 수밖에 없어 제대로 된 이익구조를 갖추기가 힘든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독일의 히든챔피언 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세분화된 전문시장을 독자적으로 개척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게 한 청장의 설명이다. 그는 “히든챔피언 기업들은 사업 초기부터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며 “우리나라도 내수시장이 좁고 불공정 경쟁 등으로 기업경영이 어렵기 때문에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해외진출이 필수”라고 언급했다.
한 청장이 최근 만난 대구지역의 엔드밀(밀링 가공에서 쓰이는 절삭공구) 제조업체 A사 대표는 얼마전 현대차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를 거절해 납품관계가 끊겼다고 한다. 하지만 매출 가운데 현대차 비중이 5%밖에 되지 않아 큰 타격은 없었다. 얼마 뒤에는 엔드밀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가격경쟁력을 갖춘 이 업체를 대체할 곳을 찾지 못한 현대차가 다시 찾아와 거래재개를 읍소한 기막힌 일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한 청장은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너가 기업가 정신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 기업의 운명도 함께 끝이 난다“며 “상황이 어렵더라도 새로운 영역에 끊임 없이 도전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CEO의 기업가 정신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청이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세계적 수준의 전문 기업 300곳 육성을 목표로 ‘월드클래스300(WC30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국내 중소업계의 한계를 절감해서다. 지난달 말 현재 153곳이 WC300에 선정됐다.
한 청장은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관행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그는 “현재의 제재수준으로는 효과가 전무하다며 제재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 사례로 “불공정행위 기업이 10점의 벌점을 받으면 3개월간 공공기관 입찰 참가제한토록 한 규정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10점에 도달하기 전에 각종 교육 등으로 기존 벌점을 없애주는 등 제도의 허점이 많아서다. 실제로 이러한 허술한 제도때문에 지금껏 벌점 10점을 받았던 전례조차 없다고 한탄했다.
한 청장은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기획재정부와 함께 공공기관 입찰 참가제한기준을 벌점 5점에 6개월 제한으로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대기업들이 하청업체에 보복행위를 한다면 한 번에 공공조달 시장 진입을 막는 등의 강력한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지난달 28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은 대기업 의존도가 너무 높다”며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지속성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정욱 기자 98lu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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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 청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중기청은 벤처기업부터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 현 정부는 초기기업이 중소→중견→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성장사다리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경우 10년이면 무명의 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국내 산업계는 변화가 없었다. IMF 당시 일부 오너 일가의 잘못으로 망한 기업을 제외하면 변동이 거의 없다.
중기청이 특정 영역의 기업 육성보다는 창업부터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는 이유다.
-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인재확보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고 있다. 중기청에서는 어떤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지.
△ 중소기업은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 등으로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력을 찾기 어렵고 구직자들은 열악한 글로조건으로 취업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특성화 고등학교나 전문대 등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중소기업 수요 맞춤형 인력을 양성해 공급하고 있다. 특히 미취업자와 특성화고생 등에 대한 직업교육을 기업이 직접 하는 ‘일-학습 병행제’를 도입했다.
재직자에게는 소득세 감면이나 사회보험료 지원 등을 통해 실질소득을 올리고 학위취득과 직업능력개발을 지원해 역량강화 지원을 하고 있다.
- 창업 3~7년차에 들어선 소위 ‘데스밸리(Death Valley)’ 구간의 기업에 대한 지원이 적다는 비판이 있는데.
△데스밸리 구간에 있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창업자금+연구개발(R&D)+정책자금’ 등 일괄 패키지로 지원하려고 한다. 지방 중기청을 통해 창업자 현장밀착형 조직을 강화, 성장단계 창업기업의 현장 애로 사항을 원스톱으로 해결하고 창업진흥원,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유관기관과의 연계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창업단계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한 기업을 지원하는 ‘본글로벌 창업스타기업육성 프로그램(가칭)’을 내년부터 시작, 수출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중소·벤처기업을 우선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실패한 기업인이 재기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은 어떻게 추진 중인지.
△ 세금체납 등으로 인한 금융 및 법률상 제약으로 재기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창업연대보증제도 최근에서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현재 금융당국과 실패 재기기업인의 채무조정 확대와 신용정보 공유제한 등을 협의 중이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실패 당시 체납한 세금에 대한 가산세를 없애고 본세의 분납을 허용하는 세제개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재창업사관학교를 만들고 재도전지원센터의 전국망 확대 등 재창업 기반 인프라도 강화할 계획이다.
- 하반기에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정책들이 있다면.
△창업기업이 중소·중견기업으로 원활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공영TV홈쇼핑을 중심으로 모바일, 인터넷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통합 유통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촉진을 위해 중국 선양(瀋陽) 등에 전시판매장 설치를 확대하고 중동의 현지 유력 쇼핑몰에 한국관 팝업 스토어를 설치할 예정이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활력 회복을 위해서는 상권을 중심으로 임대인·입점상인 등이 조합을 구성해 자체적으로 상권을 개발·관리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체계적인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기본계획’과 ‘도시형 소공인 지원을 위한 종합계획’도 수립할 예정이다.
*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1954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한 청장은 서울 중앙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경영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전략경영학회장, 한국중소기업학회장, 한국인사조직학회장, 코스닥상장심사위원회 위원장, 한양대 경영대학장을 역임했다. 지난 2013년 3월에 13대 중소기업청장에 올랐다. 이후 역대 중기청장 가운데 최장수 청장이라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많은 연구를 수행해 교수 시절 벤처전국대회 대통령 표창과 벤처육성 유공자 산업포장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