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아닌데"..정부-제약업계 총체적 엇박자

by천승현 기자
2014.12.10 06:00:00

제약업계, 정부 제약산업 육성정책에 반발
"약가 규제 강화하면서 생색내기 지원으로 일관" 비판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정부가 진정으로 제약산업 육성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제약산업 육성 5개년 계획 보완조치’에 대해 한 국내제약사 최고경영자(CEO)가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정부의 제약산업 육성 정책에 대해 최근 제약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정작 철폐해야 할 규제는 외면한 채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생색내기’만 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보건복지부는 3일 신약개발 연구·개발(R&D) 투자 효율성 제고를 위해 범부처 신약개발 R&D 협의체를 구축하고, 임상시험 발전을 위해 ‘글로벌 임상 연구 혁신센터’를 설립키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5개년 중장기 플랜을 발표했다. 복지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총 150억원을 투자해 첨단 바이오의약품 개발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제약업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지원 규모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지원실장은 “글로벌 신약 1개 품목 개발을 위해 10~15년 동안 1000억~1조원 가량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정부 지원은 ‘언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라는 얘기다.

국내업체 중 가장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이는 한미약품이 지난해 쏟아부은 R&D 비용만 1000억원이 넘지만 아직 신약을 1개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제약사들의 영세한 규모도 문제다. 국내업계 1위 유한양행의 3분기 매출은 2591억원으로 같은 기간 화이자가 올린 13조7000억원의 2%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완제의약품 제조업체 285곳이 생산한 의약품은 14조1325억원 규모다. 제약사 1곳당 평균 생산실적이 496억원에 불과하다.



업계는 정부의 R&D 지원 정책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없는 예산을 쪼개서 기업이나 대학 등에 연구비를 지원하지만 후속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세금을 투입한 연구과제가 성과가 전혀 나지 않아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사업 성격에 따라 미래부, 산자부, 복지부 등으로 나눠 지원이 이뤄지다보니 부처간 장벽에 막혀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불만도 많다.

지난 2011년 정부 부처가 손잡고 발족한 범부처 신약개발사업단은 당초 ‘2020년까지 글로벌 시장진출이 가능한 신약 10개 이상 개발’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가 지난해 ‘신약 10개 이상 기술이전’으로 수정했다. 정부가 제약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환상만 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까지 국내업체가 개발한 신약 21개 중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제품은 아직 없다.

여기에 ‘약가인하’ 규제에 가로막혀 제약사들의 투자가 주저되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어 제약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오히려 복지부는 약품비 절감을 목표로 지난 2012년 약가제도 전면 개편 이후 전체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의약품의 가격을 평균 14% 깎았다. 또 사용량이 급증한 의약품의 가격을 깎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약가 규제를 가동하고 있다.

갈원일 한국제약협회 전무는 “약가인하 정책으로 국내 제약산업이 고위험 저수익 산업으로 전락했다”면서 “약가결정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