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3.03.29 05:00:00
저신용 등급의 서민들에게 최대 100만원까지 빌려주는 소액 생계비 대출의 인기가 뜨겁다. 4주간 예정으로 22일 시작된 상담 예약에 불과 사흘 만에 상담 가능 인원의 98%인 2만 5144명이 몰렸고, 대출 첫날인 그제는 돈을 빌린 사람들로부터 “벼랑 끝에서 살아난 것 같다”는 반응이 잇따랐다고 한다. 금융 사각지대에서 작은 돈도 구할 수 없어 절박한 상황에 몰린 이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의 기부금 500억원에 은행권 기부금 500억원을 합친 1000억원을 재원으로 한 이 대출의 한도와 적용 금리(연 15.9%)는 시중 은행의 일반 가계 대출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1인당 수천만원대가 수두룩하고 금리도 한 자릿수를 넘지 않는 은행 대출에 비해 한도는 미미하고 이자는 월등히 비싸다. 현재 다른 금융 회사에 연체 중인 대출이 있어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비교에 지나지 않는다. 이 대출이야말로 독버섯과도 같은 불법 사금융의 폐해로부터 서민을 지켜줄 마지막 보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장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이로 인해 조달 금리가 연 8%대까지 치솟자 서민들의 급전 창구인 대부업체들은 줄줄이 돈줄을 조여버렸다. 대출 금리가 연 20%를 넘어야 수지를 맞출 수 있지만 법정 최고금리(연 20%)를 초과해 장사할 순 없다는 이유에서다. 상위 대부업체 69곳의 지난해 12월 신규 대출이 780억원으로 1월(3846억원)에 비해 80%나 급감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불법 사금융이 파고든 공간은 급속히 넓어졌다. 금융감독원 신고센터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건수는 지난해 무려 1만 350건에 달했다. 수백~수천 배의 이자 요구는 물론 악질적 추심 등 피해 또한 심각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필요시 추가 재원에 대해 관계 기관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지만 이는 옳은 방향이다. 벼랑 끝 서민을 보듬고 불법 사금융의 폐해를 조금이라도 줄인다는 점에서 정부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역대급 호실적을 낸 후 다양한 사회 공헌 방식을 모색 중인 은행권은 물론 타 금융사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경우 이 대출은 더 든든한 서민 지킴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