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상흑자 돌아선다면…달러 초강세 당분간 지속될 것"[위기의 원화]①

by최정희 기자
2022.09.13 05:10:01

[위기의 원화]①''킹달러'' 언제까지
달러인덱스 110선…20년 만에 최고
연준, 고강도 긴축에도 경제지표 양호
美 고질적 적자 해소 땐 강달러 심화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사진=AFP)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위협하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튀어 오른 가장 큰 이유는 달러 초강세 때문이다. 달러인덱스는 110선을 넘어 2002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를 잡기 위한 고강도 긴축 정책을 선언하면서 인위적인 달러 강세를 만들고 있지만 달러 강세는 유럽, 일본 등 주요국 대비 미국 경기가 상대적으로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미국 경상수지마저 흑자를 보인다면 어떨까. 미 달러 강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달러인덱스는 러시아가 유럽 가스관을 잠근 이후 110선까지 치솟아 2002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연초 이후 15%가 올랐다. 원·달러 환율이 올 들어 16% 올랐다는 점을 고려하면 환율 상승의 상당 부분은 달러 강세가 설명한다.

러시아가 유럽 가스관을 잠그자 달러인덱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로화가 급락했다. 유로·달러 환율이 0.99달러로 20년만에 유로화가 달러 대비 최저 수준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선 유럽 가스 공급 중단시 유럽 경제성장률은 향후 1년간 0.4~2.6%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엔화는 일본은행(BOJ)의 국고채 매입 등 돈 풀기에 달러당 140엔을 뛰어넘어 24년래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5~10년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율이 4.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영국 파운드화는 파운드당 1.14달러까지 밀리면서 37년래 최저 수준을 보였다.

달러를 밀어올리는 힘은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등 다른 주요국 통화들이 급락해서만은 아니다. 연준은 1970년대 인플레이션 통제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이 긴축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9월 20~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도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내에선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는 미국 경제가 견고함을 보여준다. 8월 비농업 부문 신규 취업자 수는 31만5000명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31만8000명)와 유사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이 발표한 8월 서비스업 경기지수는 56.9로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미 고용지표가 호조세를 보이면서 ‘골디락스(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고용 상황)’ 해석이 나오면서 달러가 오르고 있다”며 “경기 연착륙 기대감으로 미국 경제만 좋으면 달러 강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쌍둥이 적자(경상·재정수지 동시 적자)’가 일부 해소될 수 있다면 어떨까. KB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상수지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31년 만에 흑자가 나타난다면 추가적인 달러 강세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달러는 쌍둥이 수지와 같은 궤를 그려왔고 쌍둥이 적자 규모가 작아지면 강세를 기록하는 패턴을 보여왔다”며 “최근엔 에너지 수출이 빠르게 늘며 상품수지 적자가 줄어들 고 있다. 전체 무역수지에서 10% 내외에 불과했던 에너지 수출 비중이 33%로 높아졌는데 에너지 수출이 2.5배 늘어나면 경상수지 흑자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미국 무역수지는 올 3월까지만 해도 1100억달러 적자에 가까웠으나 7월엔 적자폭이 700억달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러시아가 유럽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유럽이 가스 비축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나설 경우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이 급증할 개연성이 높다. 이미 미국 에너지 수출은 1년 전 대비 두 배로 늘어났다. 영국 석유회사 BP에 따르면 미국 천연가스 생산량은 작년 기준 전 세계 23%로 최대다. 천연가스 최대 수출국은 러시아지만 유럽이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원하는 만큼 미국이 천연가스 최대 수출국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도 높다는 관측이다.

김 연구원은 “유럽 국가들이 가스 저장 가능 용량의 80%로 잡았던 비축 목표를 조기 달성했으나 내년에도 추가 비축으로 미국 천연가스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며 “급증한 에너지 수출, 무역수지 적자 축소, 경상수지 흑자 가능성은 달러를 2001년에 근접한 수준까지 밀어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다만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움직임을 고려하면 달러인덱스가 120선을 상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 이후 달러와 환율이 하락 안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달러 강세가 주춤해지기 위해선 유럽 에너지 부족이 해소되고 연준의 긴축 강도가 완화되고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해소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